물을 마시고 빈 플래스틱병을 쓰레기통에 던지자마자 아차 싶다. 다시 쓰레기통에서 물병을 집어 들고는 바코드 옆에 ‘5센트 리펀드’란 문구를 본다. 그동안 수없이 마시고 던져버렸던 물병, 그때마다 버려진 5센트를 다 모았으면 얼마나 될까?
다시 고민한다. 빈병을 집으로 가져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겨우 5센트인데 싶어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큰 아이를 생각하자 버릴 수가 없어 얼른 가방 속에 넣는다.
지난 5월 큰 아이의 대학원 졸업파티가 끝나자 맥주병, 소다 캔, 물병들로 커다란 쓰레기 몇 자루가 나왔다. 푸른 리사이클 통에 잔뜩 담긴 유리병들에서는 맥주 냄새, 달착지근한 소다 냄새가 마구 나는 것이 쓰레기 치우는 날 얼른 내다버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아이는 모든 병의 찌꺼기를 버리고 물로 헹군 다음 뚜껑까지 꼭 닫아 차곡차곡 검정 비닐 자루에 담더니 주말에 대형 마트에 가서 돈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 많은 병들을 그냥 버리다가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욕할까 싶어서 그래, 그러자 했다.
주말이 되어 집 가까이 있는 대형 마트로 가니 카트 가득 병들로 가득 찬 대형 비닐과 헝겊 주머니를 싣고 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유리병, 플래스틱병, 캔 별로 구분하여 하나씩 바코드를 보여주고 작은 투입구에 넣으면 둔탁한 소리가 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박살 난 유리가루, 납작하게 오그라진 플래스틱 조각으로 변한다. 붉은 병은 붉게, 푸른 병은 푸르게 가루가 된 잔해를 보고 ‘저 가루로 설치작품 만들어도 되겠네’ 싶다.
몇 보따리를 오랜 시간 끈질기게 하나씩 투입구에 집어넣은 결과 하얀 종이쪽지에 찍힌 금액은 5달러 남짓이다.
병들이 아직 남았는데 그 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있는지 빈병을 도로 집으로 가져왔다. 귀찮은 마음 같아서는 쓰레기통에 그냥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고작 몇 푼 때문에 저렇게 오랫동안 줄 서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중에는 묶는 끈까지 예쁘게 직접 만든 주머니 안에 종류별로 병들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여 왔는지 감탄사가 나오기도 했다. 풍부한 물자 속에 살며 일회용품에 익숙한 미국이지만 물자를 아끼고 공해를 방지하며 지구를 보호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환경보호라면 어느 주보다 앞서가는 캘리포니아는 대형마트를 비롯 모든 가게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곧 금지할 예정이라 한다. 머잖아 뉴욕에도 그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 싶다. 한 박스를 모으기까지 부엌 한구석에서 발길에 차이는 빈 물병을 볼 때마다 당장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오늘도 이기며 이게 다 공해지, 그냥 버려서는 안 되지 한다.
월드컵이 개막되고 합동 응원장에서, 술집과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술과 음료수를 마시며 월드컵 전사들을 응원하고 있는가. 그것은 얼마나 많은 빈 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인가로 귀결된다. 티끌모아 태산, 맞는 말이다. 병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재활용센터로 가져가면 쓰레기가 줄어들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도 일조한다. 작은 정성 하나가 모여 태산이 되어 주위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우리는 세계 최초의 우주여행사 유리 가가린이 말한 ‘아름답고 푸른 지구’에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다.
민병임 /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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