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토요일 오후. 구름 사이로 보이는 햇살은 쓸쓸했다. 목침 크기의 거친 화강암을 쌓아올려 지은 교회당은 견고하고 아담했다. 앞뜰에 핀 흰색과 보라색의 데이지 꽃은 싱싱하다 못해 너무 생생해서 감히 꺾지 못할 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얼굴도 모르는 신부의 하객이 되어 패사디나의 한 교회에 갔었다. 아래층 180여 좌석이 빈 곳이 더 많을 만큼 하객이 적었다. 교회 식구들이 아니었으면 식장은 텅 빌 뻔 했다. 양가 모두 연고가 없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듯했다. 결혼식의 절차도 간소했다. 평소 말을 아끼는 편인 남편도 “결혼식이 참 썰렁하다”고 끝내 한마디 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사포처럼 “그래서 하나님이 덜 축복할까요? 하객 모두가 그렇기에 더욱 잘 살기를 기원한다면 축복은 두 배로 받겠지요. 화려한 결혼식, 만반의 준비를 갖춘 완벽한 결혼식 … 여러 모양의 결혼식이 있겠지만 하나님은 축복받을 만한 이들을 축복하실 겁니다. 결혼식이 멋지다고 잘 살고 백년해로 하는 것은 아니 잖아요”라고 언성을 높인 말이 튀어나왔다.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는 일은 비즈니스를 핑계로 사양하고 남편만 참석하게 하곤 했다. 27년 전 나의 결혼식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견딜 수 없었다. 어디선가 웨딩마치만 울리면 죽고 싶을 만큼 아득했던 그때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나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때 일을 천천히 음미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대충 구색이나 갖추려고 애쓴, 가난한 나의 형편에 맞춘 초라한 결혼식이었다. 소도시 다리 옆의 누추하고 작은 예식장, 때 탄 웨딩드레스, 이 결혼을 위해서는 돈 한푼도 더 내기 싫다며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보던 시어머니, 항상 뭘 잘못하나 점검하듯 아래위로 흘기며 보던 작은 아버지, 그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야 했던 암담함, 기쁘기는커녕 너무나 두려워서 쩔쩔매던 기억, 날씨조차 꽁꽁 언 음력 정월에 있었던 일이다. 통과의례만 아니라면,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당장 집어치우고 싶었던 예식이었다.
어느새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신랑의 어머니로 결혼식을 치르려니 마음의 예행연습이 필요했다. 올해 초부터 지인들의 결혼식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마치 예방주사 맞듯 요즈음의 결혼식 분위기에 익숙해지고자 했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오기를 축복된 일에는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함께 한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통치자 폴리크라테스는 행운이 계속 이어지자 소중히 여기던 반지를 바다에 버리기까지 하며 행운을 약화시켰다.
아들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자 성경을 처음부터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심리적인 무장을 하고자 애쓰면서 긴장하면서 기도하면서 보낸 나날이었다. 결혼식 한달전 요한계시록은 두번에 걸쳐 읽으며 성경통독을 끝냈다. 그래선지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소천과 일련의 어긋남 속에서도 허둥대지 않았다.
최고는 아닐지라도 많은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예식을 마쳤다. 항상 모든 일들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몇가지 실수와 아쉬움이 남지만 만족한다. 우리 집안 유월의 잔치는 끝났다. 이제는 초대받은 모든 결혼식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지 싶다. 하객은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우아하고 예쁜 꽃 장식, 맛있는 식사, 신부의 베일과 멋진 드레스, 정말 아름다운 생의 한 장면이자 근사하고 멋진 풍경이다. 새로이 출발하는 모든 가정을 위하여 전심으로 기도하고 마음껏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아들 남근이와 유월의 아름다웠던 신부 며늘아기 사랑아, 스스로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렴. 행복한 삶의 구체적인 지침은 잠언에서 배웠잖니.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렴.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며 살아 가렴”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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