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그것도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고 끊임없이 지진 발생의 뉴스를 접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지진에 익숙 해지지 못하는 나는 지난날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된 일화가 있다
작년 12월 2일 저녁 약속이 산호세에서 있었다. 작가 신 선생님과 지인 몇 분과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려는 특별한 저녁 식사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9시 경에 7.9의 강진이 일어난다는 꽤 진지하고 정통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1989년의 대지진 당시에 가게의 술병이 떨어져 내부가 엉망이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는 약속을 연기 해야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때의 경제적 손실도 대단했지만 정리 하는데 소요된 시간과 고생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7.9의 강진이라고요? 술병을 내려 놓을 필요 없이,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멋진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죽는게 훨씬 현실적이지요. 그 정도의 강진이면 어차피 죽을 확률이 더 많거든요. 술병을 포기하고 내려와요".
7.9의 강진에 술병이 문제냐고, 무엇보다 지진은 예측 불가인데다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유 있는 목소리에도 나는 왠지 자꾸 불안했다. 결국 나는 저녁식사를 다음주로 연기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술병을 바닥으로 내려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 그때 전화가 왔다. 산호세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나도 그냥 마구 웃었다. 9시도 지났는데 아무일 없었으니 이제라도 내려 오란다. 건재한 술병들 언제 다시 올려놓을거냐고 하면서. 위로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쳐서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건 다행이지만 은근히 화가 났다. 소문을 전했던 이를 향해 허공에다 한마디 던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헛소문은 꽤 널리 알려졌던거 같았다. 언론에서도 이런 헛 소문이 있었다고 기사가 나왔다. 아무튼 안 믿었던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나는 정말 믿었다. 아마 예전에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대개 믿었을것 같다.
이렇게 지진 예보 사건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화젯거리가 되어 나를 놀리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주를 비롯해 멕시코의 바하 갤리포니아 지역등에서 발생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벌써 70차례가 넘는다고 한다. 2008년에는 29차례, 2009년에는 30차례로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란다. 이렇게 지진이 시도 때도 없이 도처에서 일고 있으나 대개는 지진 불감증으로 살고 있는데 나는 89년 후유증이 도졌던 것이었다.
다음에는 지진 예보가 방송되어도 의미있는 약속이 있다면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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