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워싱턴에서 ‘정의개선 회의’ 라는 특별한 회의가 열렸다. 25일까지 3일간 진행된 이 모임은 미전역에서 온 아시아 태평양연안 이민자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인권, 사회정의의 다양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공개 토론회의였다.
연설자와 토론자만 126명이었고, 지역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연구자, 이민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장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시카고의 아시안 연구소(Asian American Institute), 워싱턴의 아시안 정의센터(Asian American Justice Center),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법률 코커스(Asian Law Caucus), LA의 아태법률센터(Asian Pacific American Legal Center)가 2009년부터 1년에 한번씩 공동주최하는 모임이었다.
첫 이틀 동안엔 5개의 전체토론, 11개의 쟁점 브리핑, 21개의 그룹 웍샵이 있었는데, 그 주제가 주로 수용력 보강, 민권과 인권, 이민과 사회참여, 청년 리더십이었다. 같은 시간에 5-7개의 브리핑과 웍샵이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참석자는 각각 2개의 브리핑과 3개의 웍샵에만 참석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엔 참석자들이 두 팀으로 나눠져, 한 팀은 연방의회로 가서 각자 관심 갖는 문제와 관련된 연방의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또 한 팀은 금년 인구조사에 아시아계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던 단체들로 그 과정과 결과를 검토하면서 10년 후의 인구조사에 대비했다.
회의를 마무리하는 피로연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현재 200여명의 아시안 행정관들이 일하고 있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회의 참석자는 물론 그 행정관들과 인턴까지 참석하여 축제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번 회의 참석자 80% 이상은 변호사 혹은 그에 못지않은 말솜씨를 가진 이민 2, 3세들로 비영리 단체를 끌어가는 젊은 지성인들이었다. 저마다 지성, 지혜, 정력을 화려하게 펼치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그들 중에는 한인들도 많았다. 특히 회의장의 꽃인 기조연설자가 오바마 정부 법무부 수석 법률고문 고홍주(해롤드)씨였다. 성장기 가족들과 지내던 얘기를 재미있게 끌어낸 그의 말솜씨는 소문대로 일품이어서 박수가 끊어질 줄 몰랐다. 내가 한인이란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그의 아버지 고광림 씨는 장면 정부 때 UN과 주미 특명 전권공사를 지내다가 혁명정부 때 이민을 해서 한인 최초로 하버드 법대 박사학위 받았다. 어머니 전혜성 박사도 예일대 강단에 섰었는데, 이들 부모와 6남매가 소지한 박사학위가 12개이고, 4명이 예일대 강단에 서서 연방 교육부가 이 가족의 교육법을 특별 연구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아침엔 그의 연설을 듣고 저녁 리셉션에선 연방 보건부 차관인 그의 형 고경주(하워드)씨의 연설을 들으면서 감개무량했다.
그렇긴 해도 이 회의는 내게 한인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에 앞서, 아시안은 하나라는 자부심을 더 크게 해주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아시안’이 아닌, 그저 간단하게 ‘미국인’이란 단어로 불리어 질 날이 올 것이라는 예감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 중요한 회의가 주류 신문과 한국 신문에 거의 기사화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회의에서 나온 목소리가 널리 들려진다면, 아시아계와 태평양 연안 이민자에 대한 미국 사회 정의가 더욱 빠르고 확실하게 실현될 것 같은데.
김보경 / 대학 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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