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주 전 북가주한인야구협회장은 북가주 한인친선 소프트볼대회의 ‘산 증인’이다. 1946년생으로 이십대 중반인 1972년 이민을 온 그는 초기부터 지금껏 선수로, 감독으로, 심판으로, 협회장으로 이 대회와 연을 맺고 있다. 37년째를 맞은 올해도 그는 협회고문으로 기록위원으로 경기장을 누볐다.
본인뿐 아니다. 이 대회보다 늦게 태어난 두 아들(프랭키, 리처드)과 조카(케빈)는 이 대회의 현역선수들이다. 맏아들 프랭키는 개인사정으로 올해대회를 걸렀지만 심리학박사로 스탠포드대 교수인 리처드와 예비의사인 케빈은 매스터배터스에서 키플레이어로 활약했다. 특히 케빈은 아칸소주에서 ‘유학중’이면서도 이 대회에 맞춰 날아오는 열성을 보였다.
“옛날에는 대단했지. 평균 서른팀은 나왔으니까. 응원도 대단했고. 지금처럼 필드가 4개가 아니고 둘 아니면 셋이라 (경기를) 다 하자니 밤까지 야단이었어. 경기장 줄도 지금은 여기(관리공단)에서 쳐주지만 7,80년대에는 우리가 새벽에 나와서 일일이 그려서 했다고. 그때 열심히 도와준 게 저기 정영주(전 야구협회장), 박준범(전 야구협회장) 저 친구들이지.”
김 전 회장은 한인소프트볼팀을 이끌고 샌쿠엔틴교도소를 방문해 친선경기를 가졌을 때 자신들을 ‘사람으로 대해준 것’이 고맙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죄수들을 여태껏 잊지 못한다. 그의 소프트볼 추억담은 이밖에도 수두룩했다.
“발보아(SF시티칼리지 근처)에서 할 때, 구장이 좁아서 홈런이 나면 주변집 유리창이나 차유리를 깨먹기도 했는데 집주인이 공하고 깨진 유리를 들고 와서 항의를 해 물어주기도 했고. 오죽했으면 선수들한테 홈런치지 말라는 소리까지 했다니까. 선수가 다쳐서 애를 태우기도 하고, 사연 참 많지. 영화배우 최무룡씨가 여기 살 때 나오기도 했고, 국술원 총재로 있는 서인혁씨도 이 대회를 못잊더라고.”
그렇게 북가주 한인사회의 중심에 섰던 소프트볼대회가 불황탓인지 최근 이삼년동안 다소 침체됐다. 초창기 몇 년을 빼고는 늘 30팀 안팎이었던 출전팀이 재작년과 올해 20팀을 밑돌았다. 이를 두고 김 전 회장은 소망을 곁들여 처방을 내놨다.
“전처럼 교회가 다시 중심에 서야 돼. 교회팀이 출전해야 교인들 응원도 많아지고, 그래야 대회가 살지. 젊은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나오면 잘하기는 하는데 그것 때문에 교회팀들이 자꾸 사리게 된다고. 내년부터는 교회팀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부탁도 하고 무슨 수를 써야 돼.”
<정태수 기자>
사진/ 메이저리그 준준결승 매스터배터스-웰스프링전 기록을 맡은 김한주 전 야구협회장이 경기상황을 주시하며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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