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인구의 0.001% 정도만이 북한에 대해 진정한 이해나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도성장과 경제번영이 이를 잊게 만든 것 같다.”이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이 2008년 12월 워싱턴포스트지와 가진 인터뷰 기사의 일부이다. 이 같은 언급은 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과 남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잘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인권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체제와 관련돼 있어 뿌리가 깊고 고질적이며 전사회적이다.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북한 인권에는 단박약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론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럴 때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
통일은 남북한이 자유, 복지 및 인간존엄성이 보장되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 점에서 인권은 목표이며 대화와 교류협력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북한 인권 증진은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때문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세계 최악의 북한 인권 앞에선 침묵하는 이중잣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일각에서는 지금은 식량권 해결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시급히 재개할 때이지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식량지원이 북한 인권의 전부가 아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정부가 대규모 식량지원을 했지만 그 수혜가 일반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했고 일부는 군사적으로 전용되기도 했다. 즉 지원 식량이 북한 취약계층의 식량난 해소에 제한적 효과만을 거두었던 것이다. 또한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난은 수령 독재체제 유지, 근본적 개혁·개방의 거부, 주체농법 고수 때문이지 한국의 식량지원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시기 계속된 식량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은 그다지 나아지지 못했다. 2003년 4월 유엔인권위원회의 대북 인권결의 채택 이후 지금까지 10차례 이상 유엔(총회와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가 잇달아 통과되고 있는 게 그 점을 말해 준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만 실시하고 북한 인권은 잠시 제쳐놓아도 된다는 논리는 ‘통일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옳지 않다. 더욱이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 주민의 인권참상을 외면, 방치하자는 반인권적 주장이라고 하겠다. 매 맞고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여유를 부릴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나 교류협력에 치중한 나머지 북한 인권을 등한시했다. 특히 ‘햇볕정책’은 우리 국민들이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올바로 깨닫는데 방해가 됐다. 그러나 이제 북한 인권을 직시하고 진정 북한 주민을 포용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북한인권 거론에 대해 북한정권은 반발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렇지 않다. 반면 인권 개선이 수반되지 않는 인도지원은 북한 정권만 좋아할 뿐 일반 주민들에겐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해 국내외의 한민족공동체 성원들은 “국제인권규범을 지키는 것이 북한의 살 길이며 인도적 지원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 더불어 북한 인권에 대한 무관심도 바로 잡을 때가 됐다. 관심은 행동을,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북한 인권법 제정은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요구되는 이유다.
제성호 /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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