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 지나자 마자 가회동 한옥으로 이사를 왔다. 60년 가량 된 한옥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황토에 기와 조각을 끼워서 만든 황토방 처럼 생긴 욕실이 보이는데, 온돌이 깔려있어 한겨울에도 따끈하게 목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남향으로 난 아담한 안채는 미닫이 문을 닫으면 세 칸 방이 되고, 미닫이 문을 밀치면 하나의 방으로 변한다. 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낮게 난 쪽문은 머리를 숙여서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입식으로 편하게 꾸며져 있다.
흰 눈이 몇 번 내리고 봄이 오니 슬슬 여름 날 준비를 해야 했다. 대나무도 마당 한 켠에 심고, 장독 가득 매실차도 담그고, 육쪽 마늘도 처마끝에 달아놓았다.
대나무 사이로 부는 산들한 바람과 시원한 매실차 한 잔으로 더위를 식힐 수는 있어도 한 밤 중에 찾아오는 불청객 모기는 골치거리이다. 그냥 모기장을 치고 자면 편할 수도 있지만 뭔가 늘어져 있는 것을 못견뎌 하는 성격이라, 며칠을 고민하면서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방충망에 대한 조언을 구했지만 결국 맘에 드는 걸 찾지 못했다.
궁리끝에 종로 5가에 있는 광장시장 포목점에 가서 구멍이 성글게 난 삼베를 구해 왔다. 한 마에 몇 만원 씩 하는 국산 안동포는 엄두도 못내고 중국산 삼베로 방충망을 대신 하기로 했다. 창호지를 떼어 내고 문에 맞게 삼베를 재단하여, 걸쭉하게 쑨 밀가루 풀을 작은 솔에 묻혀 문살에만 풀을 발라야 한다. 왜냐하면 삼배 전체에 풀칠을 하면 구멍이 막혀 통풍작용을 막기 때문이다. 창문이 여덟짝, 쪽문이 한짝 그리고 띠살문양의 문이 여섯짝. 몇 차례 광장시장을 왔다 갔다 하며, 문 한 짝 마다 족히 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에어컨을 달면 삼베 방충망 보다 시원하고 편리하겠지만, 꼭꼭 닫아 놓은 문은, 빛과 바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한옥의 멋을 상실한다. 모기는 걸러내고 바람은 통하는 삼베 방충망을 단 창과 문은 참 운치있고 멋스럽다. 성근 삼베망을 통해 바라보는 문 밖 전경은 색다른 풍경화 같다.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에는 다시 삼베를 떼어 내고 문에 한지를 발라야 한다. 그럼 창호지 너머로 따스한 가을볕이 방 안 가득 들어 온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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