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는 미국 시민권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수정헌법 14조는 관할권에 문제가 없으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미국시민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 동안 연방 대법원도 판례를 통해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자라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현재 수정헌법 14조가 말하는 관할권이 없는 케이스는 미국의 영토를 점령한 적군의 자녀 혹은 미국에 근무하는 외국 외교관만을 뜻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민법 개혁 법안 통과에 앞장섰던 린지 그래함 연방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등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이 운동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헌법에 미국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시민권자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무슨 소리냐. 헌법을 개정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고 일축하기에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말자는 공론이 현실이 되려면 그 첫 번째 방법은 헌법 개정이다. 그러나 이 문제로 헌법을 고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수정 헌법 14조를 손질하려면 상하 양원의 3분의2 찬성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잡한 추인절차도 거쳐야 한다. 한 마디로 헌법 개정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수정헌법 14조를 그대로 두고 문구를 재해석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말자는 사람들은 수정 헌법 14조에 붙어 있는 “관할권에 문제가 없다면”이라는 단서에 주목한다. 미국 정부가 불법체류자에게는 관할권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수정 헌법 14조는 남북전쟁 후 흑인 노예와 그 후손에게 시민권을 줄 목적으로 1868년 만들어졌다. 수정 헌법 14조는 열등한 흑인들은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보았던 드레드 스카 판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수정 헌법 14조는 인디언 부족을 형식상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어서 이들에게는 미국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이 예를 근거로 불법체류자는 몸은 비록 이 곳에 있지만 출신 국가가 이 사람들의 관할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캐나다를 제외한 다른 서방국가들은 불법체류자의 자녀가 자국 영토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시민권을 주는 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 한 번도 대법원이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는 문제를 직접 판단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도록 일단 입법을 추진한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목표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지난 96년 이민법 개정 당시에도 이런 주장이 나와서 입법 일보 전까지 갔던 일이 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불법체류자의 자녀도 시민권자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불법체류를 하는 학생들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느냐를 판단한 1982년 대법원 케이스에서 대법원은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도 수정헌법 14조에서 말하고 있는 관할권을 주정부가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말자는 의견은 미국의 경기 불황과 맞물려 11월 중간 선거까지 계속 힘을 얻을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입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미국은 이 이슈를 둘러싸고 불난 호떡집처럼 요란할 것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미국도 수정헌법 14조 관련 문구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영국이나 뉴질랜드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처럼 불법체류자나 단기 체류자 자녀들이 일정기간 미국에 거주한 후에라야 시민권을 주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김성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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