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을 사이로 즐비하게 들어선 가회동 한옥마을 일대에는 고금을 막론하고 유명인사들이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 갔고, 아직도 적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조선 세종때 학식과 인품이 빼어나고 청렴 검소하며, 명재상으로 알려진 맹사성 대감 또한 이 한옥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집터는 가회동 31번지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골목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경복궁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일설에는 세종이 간혹 내시를 시켜 맹사성의 집에 불이켜져 있나 살펴보고 잠이들지 않았으면 그를 불러 야밤에 학문을 논하였으며, 청백리 맹대감은 이 언덕길을 소를 타고 다니며 때로 퇴청 후 사랑채에 앉아 피리를 즐겨 불었다고 한다.
또한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이 기거했던 아흔 아홉칸 한옥은 가회동과 안국동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1870년대에 민영익 대감이 지은 집으로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랑채, 안채, 안사랑채, 별당등 한옥의 위엄을 떨치며 지금도 늠름한 기둥이 위풍당당히 서있고, 유연한 처마선들이 느긋하게 드리워져 있다.
가회동의 유명세는 이명박 대통령도 한 몫을 톡톡히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당선되기 전 전세로 20개월 가까이 살았던 집이 가회동 31 번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부터 세 집 건너 있는 그 한옥은 지금은 비어있으나, 이 명당터를 보려고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알만한 연예인들과 대기업의 회장님들도 가회동에 기거한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주민들은 꼬불한 골목길을 올라와 깔딱 고개를 넘어서 가회동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사십년 가까이 꿋꿋이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동네 토박이 아주머니는 예전에는 해가 지고 집집이 전등이 하나 둘 켜지면 골목 아래서 바라보는 가회동 31번지의 전경은 꼭 별들이 반짝이는 달동네 처럼 보였다고 한다.
모기업 회장님의 500평 저택이 이 작은 동네에 들어서며 그 꼬불한 길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섰던 기와집들은 몇 채의 대저택으로 탈바꿈하여 이제는 그 골목길로 자동차들이 슝슝 달린다.
토박이들을 물갈이 하고 가회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속히 가회동 31번지로 모여든다. 가히 명당은 명당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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