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가을이 왔나보다.’ 사실상 이미 오래전에 이렇게 칼럼 서두가 나가야 맞다. 하지만 9월 중순인데도 더위 여파가 남아있다.올 여름 그렇게 더울 수가 없었다. 국립기상데이터센터에 의하면 동부와 남부지방에 강한 고기압대가 여름내내 형성되어 맑은 날씨와 함께 예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발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을 기온도 예년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무더위 속에서도 인간들은 자생하려는, 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9월 들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화계의 움직임이다. 긴 여름동안 칩거하며 더위를 참고 이겨냈던 음악인들, 미술가들, 무용가들이 여기저기서 공연을 하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 폭염 속에 일궈낸 알토란같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뉴욕필은 오는 22일, 메트 오페라는 27일, 카네기홀은 29일 개막공연으로 2010~2011시즌을 시작한다. 뉴욕필에는 미셀 김 부악장 등 6명의 한인연주자들이, 카네기홀에서는 11월 9일 조수미, 12월에 바이얼리니스트 제니퍼 고가 연주를 하며 메트오페라 새시즌에는 홍혜경, 캐슬린 김, 연광철, 이용훈 한인 4명이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일궈낸 한인 예술가들의 작업이 우리에게 즐거운 기대를 갖게 한다. 맨하탄과 퀸즈, 뉴저지, 롱아일랜드 곳곳의 공연장과 갤러리에 한인예술가들의 작품이 봇물 터지듯 선보여지고 있는데 대부분 무료 연주, 무료 전시다. 국악인 박봉구씨가 참여하는 블루 앤 화이트 콘서트가 25일 롱아일랜드 브루클린캠퍼스 컴블 극장에서 코리안 아메리칸 음악을 소개하고 10월8일에는 갤러리 코리아에서 정상미 피아노 트리오 콘서트가 열린다.
전시회는 더욱 다양한데 맨하탄 곳곳에서 7인그룹전, 이환권전, 천세련전, 조희정전, 신한종전, 오채현 임은자 2인전, ‘트윈 타워전’, 김포 한용진 임충섭 변종곤 이일 조숙진 그룹전과 백남준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퀸즈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서는 한인작가 이종건씨의 ‘천국의 다리’설치작 외 17인의 펠로십 작가 그룹전이 이스트 리버를 배경으로 대대적으로 전시 중이고 코리아 빌리지 열린공간에서는 이달 30일부터 10월3일까지 난정 이위순 서화전이 열린다. 뉴저지에서는 이한종전, 전동화전, 한희명전, 롱아일랜드 만하셋 쉘터락 아트갤러리에는 조성모 개인전이 26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참여하는 무용제도 열린다.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의 제10회 덤보무용제에 87개국의 무용수 450여명이 참여하는 대향연이 펼쳐지는데 개막공연 외에는 모두 무료이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화산이 뻥뻥 터지고 홍수가 나는 등 날씨가 아무리 천지개벽을 만들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부단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가는 잔재미가 무엇인가.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세상 구경을 이리저리 하고 산다면 이민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시시해, 재미없어 하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그저 졸려 하는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번 주말 가을나들이를 해보자. 눈이 풍요로워지고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신경숙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네. 우리는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테지.’ 문득 그 부분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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