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10년 전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금의 사망’이란 특집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당시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터넷 붐으로 하이텍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모두 어떻게 주식으로 떼 부자가 되나 하던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였다.
반면 금값은 몇 년째 하락에 하락을 거듭, 온스 당 250달러 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1980년 인플레와 함께 금값이 광분하던 시절 온스 당 850달러까지 올랐었으니까 20년 동안 한 푼도 안 오른 정도가 아니라 70%를 까먹은 셈이다. 거기다 20년 동안의 인플레를 감안하면 80년에 금을 사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원금의 90%를 날렸다. ‘금은 금세기 최악의 투자 대상’이란 말이 나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하이텍 버블이 터지고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사라진 지금까지 금만은 중단 없는 상승을 거듭해왔다. 금은 지난주 1주 사이 세 번이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연이어 금융 불안으로 사람들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고 있으며 금이 1순위 인기 종목이란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10년 사이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
5년 전 타임지는 ‘홈 스윗 홈’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어째서 미국 주택 값은 오를 수밖에 없으며 주택이야말로 부자가 되는 첩경인가를 자세히 썼다. 타임지는 인터넷 주식이 난리를 칠 때 하이텍 붐이 어째서 계속될 것인지에 관한 기사도 여러 번 썼다. 한 타임지 기자는 개인적으로 자신도 AOL 주식을 샀다면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 때 타임워너를 집어 삼킬 듯한 위세를 떨치던 AOL은 하이텍 버블 붕괴와 함께 타임워너사 이름에서도 퇴출되고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르는 처지로 전락했다.
타임이 주택 시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다음해 주택 경기의 선행 지수인 주택건설회사 지수는 절정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주택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2008년 리먼이 도산하면서 대공황이 이후 최악이라는 금융 위기가 닥쳤다. 그 후유증에 아직도 미국은 몸살을 앓고 있다.
타임은 이달 최신호에서 다시 주택 시장에 대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이번 기사의 내용은 어째서 집을 가지고 돈 벌려 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주택 소유가 어떻게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5년 전과는 딴판도 너무 딴판이다. 지난 3년간 혹독한 주택 시장의 몰락이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를 이보다 극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타임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잡지들이다. 이런 잡지가 어떤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는 것은 사회 분위기가 확고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 편집자들도 트렌드는 이쪽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 사람은 모두 다 산 상태에서 물건 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팔 사람은 다 판 상태에서 오르지 않는 물건도 없다. 정점에 선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다.
그런 면에서 이번 타임지 기사는 희망적이다. 아무도 집을 가지고 돈을 벌려 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은 주택 시장의 바닥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택 경기의 선행지수인 주택 건설업자 지수는 18개월래 최저에서 머물고 있다. 이 지수가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반등세를 보여준다면 앞으로 1~2년 내 주택 시장도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해서는 남들이 안 살 때 사고 살 때 안 사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저기서 금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지금 금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은 90년대 하이텍과 2000년대 주택 버블의 교훈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할 일이다. 역발상과 용기는 훌륭한 투자가가 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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