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시인)
어찌된 일인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리라는 것이 수 없이 많아, 그놈의 자리가 뭔지 자리다툼이나 자리를 엿보다가 짧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일쑤다. 옛말에 “설자리 앉을 자리 가려서 처신하라“는 말이 있다.
무궁무진한 그 자리, 높은 자리가 있는가 하면, 낮은 자리도 있고 앞자리가 있는가 하면, 뒷자리도 있다. 위로 장관자리가 있는가 하면, 밑으로 면서기 자리도 있고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 자리가 있는가 하면, 여차 하면 4.19 혁명처럼 힘으로 똘똘 뭉치는 국민의 자리도 있다. 세상은 온통 자리 투성이다.
윗자리, 아랫자리, 옆자리, 뒷자리, 국회의원 자리, 국회의장 자리, 원내총무 자리, 국회사무국장 자리, 계장자리, 과장자리, 국장자리, 군대에서 계급보다 중요한 것은 보직의 성격이라 자리가 좋으면 아무리 높은 계급이라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황금자리, 경쟁이 심한 사단장 자리, 사단장의 신임이 두터워야 쉽게 차지하는 연대장 자리,대통령의 안위를 보살피는 경호 실장 자리나 나라 살림에 밑천을 대주는 관세청 자리, 운동선수들을 훈련시키면서 지휘하는 감독자리, 선생자리, 교장자리, 어른자리, 애들 자리, 등등 모두가 자리 매김이다. 어떤 자리든지 마음에 드는 자리란 차지하기도 쉽지 않지만 차지한 자리를 깨끗하게 지키기란 더욱더 쉽지 않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내가 내 자리를 티 없이 맑게 지키면서 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조상님들 덕분에 나 좀 잘 되게 해 달라고 값 비싼 명당자리 골라 부모를 모시어봤자 일 년에 한 번 찾아가 제 멋대로 자란 봉분의 잡풀 뜯고 엎드려 절하며 앞날 좋기를 바라는 자식들에게 과연 좋은 자리가 생겨날까? 아무런 권위도 없고 법적구속력도 없는 이민사회의 단체장 자리를 차지해 보려는 야심꾼들 때문에 선거 때만 되면 잘 되어가던 이민사회가 패가 갈리고, 시끄럽고, 때 묻은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단체장이 된 사람이 힘겹게 모은 회원들의 회비인 공금을 마음대로 써서 불협화음이 인다면 단체장 자리를 지켜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옆 자리에서 보아도 딱할 만큼 기를 쓰면서 단체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며 매달린다.
다민족 국가에서의 한인사회 자리는 여러 민족 가운데 우뚝 서 있어야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높은 자리란 번민과 고민을 생산하는 자리다. 편한 마음으로 사는 데에는 낮은 자리가 제일이다. 낮은 자리에 만족할 줄 아는 높은 생각이 하루하루를 편하게 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아무도 시기하지 않으며 밀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누울 자리가 아닌데 잘못 누우면 본인과 집안이 절단 나고, 설자리 아닌데 잘못 서면 얼굴이 팔리며 망신을 한다. 자리란 원래 비어있는 것이지만 자리의 임자가 되려면 적어도 어두운 하늘에 별자리처럼 차지해야 된다. 세상은 어둡다. 어디를 가나 구정물이 흐르는 인간관계로 여기
저기에서 악취를 풍긴다. 명색 좋은 문화단체나 문학단체도 예전의 맑은 정신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디에서 배워서 물들어 젖어 있는지 진정한 문화나 문학보다도 정치하는 데에 맛 들이고 침묵은 고만두고라도 조용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이 거리 저 거리에 흘리고 다니는 내용이 모두 냄새 투성이다. 이래
가지고 본인이나 단체나 사회가 언제쯤에나 맑아지겠는가? 이게 다 그놈의 자리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