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CPA사무실을 첫 개업했을 때였다. 백인 고객들은 약속된 비용을 군말 없이 지불 하는데 어떤 아시안 고객들은 지불할 것은 다 하면서도 꼭 한번 씩은 가격을 흥정하려 들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 것 같았다. 인턴기간 때 선배 전문인들로부터 프로페셔널로서 공인회계사가 갖추어야 될 덕목을 배운 뒤라 퍽 당황스럽고 불쾌하기도 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 전문인의 수임료도 상품화 되어 싼 값에 고객을 유치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내가 속한 전문인 단체에서 매 회의 때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소개 하며 PR하는 순서가 있다. 회원 중에 ‘Medical Advocacy’라 하여 의료 환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한테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환자들을 대신해서 의사를 포함해서 병원이나 보험 회사들과 치료비 협상을 하며, 기각된 보험 항목을 재검토하게 하여 환불을 받아내는 등 그들의 역할이 눈에 뜨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사한테 치료받은 다음 보험회사에 환불신청하고 본인이 내야 되는 코페이를 지불한다. 때로는 보험회사에서 지불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Medical Advocacy’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험이나 의료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Practice Nurse’라 하여 보통 간호사가 하는 이상의 일을 한다고 한다. 이들은 충분한 의료 지식으로 보험회사나 의료단체를 상대하여 흥정하고 협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박한 의료지식과 경험이 의료비를 대폭 낮추어 준다. 이 전문인들에게는 시간당 약 50달러를 지불할 수도 있지만 일정한 액수로 수임료를 정할 수도 있다. 역시 이것도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이 직종은 새로운 전문 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자격증을 요구하는 시대가 2, 3년 안에 올 수 있다고 한다. 소비자를 위한 그들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그런데 최근한 미국신문에 치료비 흥정기사가 크게 났다. 의사나 병원청구서를 흥정하는 방법을 실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보도하였다. 근래 의료비 상승 때문에 환자가 부담하는 액수가 적지 않은데 소비자들은 병원청구서를 자세히 항목 별로 검토하고, 할 수만 있으면 액수를 흥정해야 된다는 기사였다.
의료보험을 잘 알고 있는 어떤 소비자는 치료받기 전에 의사와 상의하여 치료비를 2,500달러에서 1,000달러로 흥정하고 본인은 코페이 200달러만 지불했다고 한다.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1,500달러를 지불했어야 했다. 의료비에 관한 사전 지식을 갖고 끈질기게 협상을 한 결과다.
물론 의료를 담당하는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고 물건 값 흥정하듯 해서는 안 된다. 의료비의 융통성을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청구서를 받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지불한다. 의사나 병원에서는 할인해서라도 당장 현금을 받는게 보험회사에서 받는 액수와 비슷하기 때문에 할인된 가격에 동의한다.
큰 보험회사에서 의사나 병원에 디스카운트된 액수를 지불하는 것은 상식화된 이야기다. 더구나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험에 든 환자보다 비싼 액수로 청구하지 못하도록 한 법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의료분야를 잘 알지 못하면 필요 이상의 치료비를 지불하게 된다.
자신이 없다면 ‘Medical Advocacy’라는 전문인에게 의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협상을 통한 상거래가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미국을 더 잘 아는 기회도 된다. 의료비라고 해서 너무 겁부터 먹지는 말고 협상의 여지가 있는지 잘 살펴보자.
이종혁 /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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