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산업을 석권했던 GM은 퇴직 직원들의 연금 때문에 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호황기를 누릴 때 퍼줬던 퇴직자 연금제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지면서 가뜩이나 경쟁업계에 밀리던 GM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자동차 3대를 팔아야 은퇴자 1명의 연금과 보험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나라 그리스도 연금 때문에 휘청댄다. 부패가 만연해 세금 거두기도 어려운데다가 국민 연금 부담은 해가 다르게 늘어나니 국가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 공무원은 45세에 은퇴해 연금으로 평생을 먹고산다.
쫓겨나는 법도 없는 철밥통이다. 그리스만이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이 연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은퇴연령을 늘리는 등 해결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도 공무원 연금에 발목이 잡혀있다. 미국 공무원들은 소셜시큐리티 세금을 내지 않아 연방 정부의 소셜 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신 각 정부가 100% 보장해주는 공무원 연금을 받는다. 작은 돈을 내고 은퇴 후 정부로부터 큰돈을 보장받는 식이다. 돈이 부족하면 국민의 세금으로라도 충당하게 돼 있다.
캘리포니아 주내 경찰 및 소방 공무원은 일정기간(보통 30년)을 채우면 50세부터 은퇴할 수 있고 마지막 해에 받은 연봉의 90%를 평생 연금으로 받는다. 일반 공무원은 55세부터 받는데 역시 가장 많았던 연봉의 80~85%를 매년 수령한다. 일부 경찰 및 소방 공무원들은 은퇴 마지막 해에 오버타임이나 병가 등을 몽땅 긁어모아 연봉에 가산하는 일명 ‘스파이킹’이란 수법으로 연금 수령액을 늘리기도 한다.
국민들을 위해 일해 온 공무원들이 퇴직 후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호경기때 이야기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증권경기가 하락하고 은퇴자가 증가하자 연금 재정이 큰 손실을 거듭하면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곧바로 국민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져 각종 세금이 올라가고 그렇게 모아진 세금은 그들의 연금으로 지급된다.
지난 7월 주정부 회계국은 향후 4년간 주정부나 지방정부들이 물어야한 연금 지급액이 해당 정부 일반회계의 최고 3분의1까지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공원이나 도서관, 도로공사, 공공안전등에 사용돼야 할 국민의 세금이 공무원들의 노후 비용 충당에 사용된다는 말이다.
200여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는 일반 회계 달러당 80%를 은퇴자 연금과 공무원 봉급으로 사용할 정도다. LA시의 연금 지출도 2014년에는 현재의 2배가 늘어나 일반 예산의 3분의1을 차지하게 된다. 급기야는 노조의 후광을 받아오던 LA시장이 신규 공무원에 한해 퇴직 연령을 올리고 본임 부담액도 늘리는 내용의 연금 개혁법을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뿐만이 아니다. 일리노이 주도 은퇴연령을 전국에서 가장 높은 67세로 상향조정하고 연금액 상한선을 만들었다. 콜로라도는 현직 공무원들의 연금뿐 아니라 연금을 수령하는 은퇴자에게까지 일괄적으로 돈을 삭감했다가 소송까지 당하고 있다. 연금 적자에 시달리는 뉴욕과 애리조나 역시 이를 개정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 중이다.
캘리포니아의 연금 문제는 정치인들이 막강 노조의 로비에 밀려 공무원 임금인상과 후한 연금 지급에 몰두해온 결과다. 주 의회는 재정이 곤두박질치던 2007년에서야 비로서 정신을 차리면서 더 이상의 공무원 복지 혜택 확장에 막을 내렸다.
잘나가던 ‘황금의 주’(골든 스테이트)때 주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제리 브라운 민주당 후보가 벼랑에 몰린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다. 맥 휘트먼 공화당 후보와의 정책 토론 때 연금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지 못했던 그가 의회의 당파싸움과 노조의 힘이 더욱 막강해진 지금의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묘책을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김정섭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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