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는 최근 쇠락한 기세를 보이는 이탈리아 영화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타비아니 형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 1960-70년대 좌파 영화감독들의 전통을 잇는 수작이다.
영화는 부유한 중년여성이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멜로드라마로 치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은 병든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꽉 차있다. 제목만 보고 말랑말랑한 로맨스영화를 기대했다가는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자본과 불평등에 대한 영화의 태도는 엄정하고 단호하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상류층 레키 가문의 며느리 엠마(틸다 스윈턴)는 아들 에도아르도(플라비오 파렌티)의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가 만들어준 요리를 우연히 맛본다. 단번에 접시를 비운 엠마는 점점 안토니오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딸과 함께 들린 휴양지 산레모에서 우연히 안토니오를 만난 엠마. 그녀는 안토니오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으로 가 달콤한 정사를 나눈다. 밀라노로 돌아온 그녀는 아들 에도아르도에게 외도 사실을 들키고 화가 난 에도아르도는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영화는 밀라노-산레모-런던 등 3개의 장으로 나뉜다. 장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밀라노는 음울하고 산레모는 화사하며 런던은 현대적이다.
‘틸다 스윈턴:러브 팩토리’(2002) 등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인물의 심경과 도시의 색채를 연동시킨다. 시댁인 밀라노에서 엠마의 마음은 먹빛이고, 안토니오와의 사랑을 이루는 산레모는 찬란한 금빛이다.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카메라의 움직임, 조명, 색 등을 통해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한다.
엠마의 자각 과정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엠마는 러시아 출신으로, 부자 남편을 따라 밀라노에 정착한 노동자 계급 출신의 인물. 엠마라는 이름마저 남편이 지어줬다.
"남편은 예술품을 수집하러 러시아에 왔었어. 그 후 밀라노에 왔고 다신 돌아가지 못했지. 난 이탈리아인이 되는 법을 배웠어. 사실 엠마는 진짜 이름이 아니야. 그이가 지어준 거지. 진짜 이름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집에선 다들 키티쉬라 불렀던 기억이나."(엠마)
마치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살아온 엠마는 노동자 계급에 속한 안토니오를 만나고, 그가 해 주는 음식을 통해 오랫동안 잃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가 짙다. 섬유업 대신 금융분야로 진출하려는 레키 가문의 변신은 전통을 버리고 오직 이윤만을 창출하려 한다. 전통을 살리려는 에도아르도의 노력은 돈에 눈먼 아버지 탄크레디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뿐이다. 주식 매입협상을 위해 런던에서 밀라노로 건너온 영국인이 "자본만이 민주주의"라고 내뱉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에 닿아있다.
멜로드라마를 영화적 장치로 이용해 할 말 다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탁월하다. 멜로드라마안에서 부국과 빈국, 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문제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말러의 곡 등 다양한 음악은 장면을 풍성하게 하고, 각종 서양 고전 그림들은 화면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영화의 리듬감이 유려한데다 카메라의 화법도 다양해 화면을 보는 즐거움도 안겨준다.
영국의 명우 스윈턴의 연기가 눈길을 끈다. 모든 대사를 이탈리아어로 소화한 스윈턴은 엠마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서 보여준다. 51살이라는 적잖은 나이, 세계적인 명성에도 정사장면을 위해 옷을 과감하게 벗는 그의 용기가 놀랍기만 할 뿐이다. 상영시간은 120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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