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파릇파릇한 아가씨와 30대 중반 아저씨로 만났던 두사람이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얼굴을 한채 60년만에 만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6.25때 헤어진 은인을 60년이나 지난 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2월6일 SF에서 작품 발표회를 갖는 이영자 교수(전이화여대 작곡과)는지난 31일 제자인 나효신 작곡가의 SF 자택에서 은인 심호택 옹(94세)과의 극적인 상봉을 갖고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얼굴만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생각해 왔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뤘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문을 연 이 교수는 “은인 심호택옹에게 생명을 빚졌으면서도 전쟁의 와중에 생사조차 확인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먼 이국 땅에서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감격스럽다”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당시를 회상했다.
심호택 옹과 이영자 교수와의 생사를 넘나든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6.25가 발발했던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갓 스무살이 되어 이화여대에 입학했던 이교수는 6.25가 터지자 황망스레 춘천에 있던 부모님을 찾아 떠나게 된다. 기차를 비롯 모든 교통수단이 두절, 밤낮 3일을 걸어 간신히 춘천에 도착한 이 교수는 그러나 부모님이 모두 피난을 가고 집은 인민군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고급 공무원(당시 강원도지사 다음 위치인 내무국장)이어서 잡히면 죽게된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곳을 도망친 이 교수는 빈집털이 등으로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다 몸무게가 35kg까지 줄어들자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바로 평소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심호택 옹의 자택. 강원도청에 근무했던 심옹은 이교수를 보자 마치 친딸 대하듯 몸을 숨겨준 것은 물론 쌀밥 등으로 이교수를 보호, 이 교수가 서울 수복때 부모님과 다시 상봉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이교수는 당시 인민군에게 발각되면 큰 화가 닥칠 수 있었는데 정말 목숨을 건 도움이었다고 회상했다. 부모찾아 삼만리라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춘천을 떠날 때에는 돈까지 쥐어주었다며 심옹의 고마운 마음을 회상하던 이교수는 “시체를 넘고 넘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아버지와의 극적인 상봉을 이루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지만 정작 큰 도움을 주었던 심옹과는 1.4후퇴가 터지면서 다시 피난길, 찾아보지도 못하고 이처럼 생이별 60년을 이어왔다”면서 생사여부도 모른채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는데 이처럼 극적인 상봉을 이루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감격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영자 교수가 심옹의 생존 여부를 알게된 것은 작년1월. 만 1년전이었다. 1994년 예일대학에서 있었던 제자 나효신과의 인터뷰 도중 우연히 흘린 심옹에 대한 이야기가 씨앗이 된 것.
드디어 3월1일 나씨에 의하여 심옹과의 극적인 전화 통화를 이루게 된 이 교수는 감격에 겨워 그저 서로의 이름만 불렀다며 심옹이 의외로 뚜렷한 기억력을 가지고 당시를 회상했다면서 이제 심옹을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감격해 했다.
이영자 교수는 이번 음악회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작곡한,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의 희노애락을 그린 작품 ‘슬픈 노래’(3대의 고토를 위한 현악곡)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31일 낮 SF 나효신 작곡가 자택에서 6.25때 생명을 구해준 심호택옹(왼쪽)과 극적인 상봉을 이룬 이영자 교수(오른쪽)가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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