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니멀 타운’ 전규환 감독
"개봉 못 한다고 일을 안 하기엔 시간이 아깝잖아요. 계속 만들자고 프로듀서에게 졸랐죠. 제 모든 걸 털어서 제작비를 어느 정도 만들어왔고 프로듀서도 사재를 털고 다른 데서 몇천만원씩 구했어요."
극장 개봉에 개의치 않고 2008년부터 3년간 무려 4편의 장편영화를 찍은 전규환 감독의 말이다.
전 감독은 편당 적게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까지 든 영화를 만들 때마다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팔아 제작비에 보탰다는 일화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처음 ‘모짜르트 타운’을 만들 때 차를 팔고 찍기 시작했어요. 여동생이 걸어 다니지 말라면서 타던 차를 줬는데 한 달도 못 타고 다시 팔아서 ‘애니멀 타운’을 찍었죠. ‘댄스 타운’ 할 때는 동생이 ‘이번엔 절대 팔지 마라’면서 차를 내줬는데 또 팔았어요. ‘바라나시’ 때도 누군가한테 차를 얻었는데 팔았어요."
그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모짜르트 타운’ ‘애니멀 타운’ ‘댄스 타운’ 등 이른바 ‘타운 3부작’을 내놓았으며 인도를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 ‘바라나시’의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차를 팔고 빚을 져가면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내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면서 "즐기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전 감독의 영화는 ‘댄스 타운’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으면서 서서히 알려졌지만, 일반 관객을 만나는 것은 10일 개봉된 ‘애니멀 타운’이 처음이다.
이 영화는 아동성폭력 전과자 오성철과 그 때문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인쇄업자 김형도의 눈으로 바라보는 비정한 도시를 그린다.
전 감독은 "인물들을 통해서 도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타운’ 시리즈는 말 그대로 도시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면서 "도시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행복하고 활기찬 도시 안에는 어두운 뒷골목 삶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묵묵하게 인물을 따라가고 별다른 기교도 부리지 않아 지루하게 느낄 관객도 있을 법하다. 그는 "나도 테크닉은 부릴 수 있지만, 남들 다 하는 걸 굳이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데 다른 사람의 문법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야기로 풀어가는 거지 장치나 재주로 뭘 만드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래서 ‘애니멀 타운’에서는 음악과 효과음을 하나도 안 썼다"고 말했다.
"배우들 연기할 때 목 조르는 장면에서 인쇄업자가 눈물 콧물 다 흘렸어요. 그런데 전 흘리지 말라고 했죠. 결국, 말을 안 들어서 편집할 때 잘라버렸어요.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담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성철을 상징하는듯하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질서 안에 야생동물이 들어와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성범죄자 역시 인간의 질서를 해치죠."
도시를 주제로 한 영화를 3편이나 만들었지만, 그는 "도시 이야기는 아무리 죽을 때까지 한들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연출하기 전에 매니지먼트 회사와 영화 제작사 대표를 지낸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배우 조재현, 설경구 등의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영화를 배웠다고 했다. 매니지먼트 일을 하다 영화감독이 된 사례는 "내가 알기로는 충무로에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조재현이 주연한 김기덕 감독의 ‘악어’(1996)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놨다는 그는 조재현과 설경구 덕분에 김기덕, 이창동, 전수일 등 좋은 감독에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늘 배우와 제작자, 감독과 붙어 있어요. 기획 단계부터 포스터 떨어지는 순간까지 옆에서 보고 배웠어요. 다른 스태프가 못 보는 세세한 면까지 다 볼 수 있었죠. 어깨너머로 배워서 이렇게 4편을 찍었네요."
제작사에서 만들어줬다는 그의 명함에는 이제까지 만든 영화와 앞으로 만들 영화 7편의 제목이 적혀 있다. 사십 줄에 접어들어 연출을 시작한 늦깎이 감독의 넘치는 창작욕을 명함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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