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 펀치’ ‘한나’
상업영화 새 시장 개척
"훔쳐보기 대상" 비판도
소녀들이 총을 들었다. 우연이라고만 말하기엔 시기가 절묘하다. 앞다퉈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써커 펀치’(7일)와 ‘한나’(14일). 판타지 액션과 첩보 스릴러로 장르를 달리하지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소녀가 주인공인데 보통 소녀가 아니다. 권총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쏟아지는 탄피 앞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할리우드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는 저리 가라다.
바야흐로 소녀전사의 시대가 왔다. 단순한 영화적 소재로 치부하기엔 두 영화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 새로운 문화적 징후로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녀 인간병기의 도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써커 펀치’는 정신병원에 부당하게 갇힌 다섯 소녀의 탈출기를 다룬다. 소녀들이 탈출을 위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거인 사무라이와의 대결, 나치군단과의 전투, 용ㆍ로봇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은유한다. 짧은 교복치마에 배꼽이 드러나는 탱크톱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소녀전사들의 초현실적인 활약상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한나’는 보다 현실적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간여한 모종의 군사실험에 참여했다가 도주한 전직 CIA 요원의 딸 한나(시얼샤 로넌)가 히로인이다. 그는 핀란드 오지에서 인간 병기로 길러지다 열 여섯 살에 엄마의 복수를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군인들을 한 손에 제압하고, 닌자처럼 행동하는 한나의 모습은 이전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여성상이다.
지난해 개봉한 ‘킥 애스’가 두 영화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복수를 위해 특별 훈련을 시킨 열한 살 소녀 힛-걸(클로이 모레츠)은 앳된 얼굴과 단구가 빚어내는 액션으로 의외성의 즐거움을 전달했다. 칼로 악당들을 난도질하는 힛-걸은 "메스껍지만 매력적"(뉴욕타임스)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여성상의 새 징후
소녀전사의 잇단 등장은 상업적인 필요에 의해서다. 10대 후반 주인공을 내세워 젊은 관객들을 호객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열 여섯 순수하고 치명적인 살인병기’(’한나’), ‘열광하라, 짜릿한 신세계를’(’써커 펀치’)이란 국내 광고문구는 이런 상업적 전략을 반영한다.
’써커 펀치’와 ‘한나’의 소녀전사는 영화 속 여성상의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남성들을 위한 눈요깃거리로만 소비됐던 제인 폰다 주연의 ‘바바렐라’(1968)의 여전사 이미지는 졸리의 ‘툼 레이더’ 시리즈 등을 거치며 조금씩 바뀌어왔다. 소녀를 앞세운 ‘써커 펀치’와 ‘한나’는 졸리의 여러 액션영화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여주인공들은 좀 더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이전 여전사보다 훨씬 과격하게 묘사된다. 한 소녀가 ‘女性’(여성)이라는 한자가 또렷하게 새겨진 로봇을 타고 적을 섬멸하는 ‘써커 펀치’의 한 장면은 이런 연출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소녀전사의 등장은 기존 영화의 진부함을 없애려는 시도이자 사회 전반적인 ‘알파걸’ 현상의 반영"이라고 분석했다.
소녀전사를 다룬 영화는 여전히 한계를 품고 있기도 하다. ‘써커 펀치’에서 살을 드러낸 소녀들은 여전히 훔쳐보기의 대상이다. 미국 연예전문주간지 할리우드리포터는 "’써커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쇼걸’(1995)의 지방순회 단원 같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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