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실의 시대’ 연출
"프랑스어로 된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1994년이었어요. 스토리와 캐릭터에 감명받았죠. 이 책은 제가 받아들이기에 매우 친밀한 방식으로 마음 깊이 말을 걸어왔어요.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고 충분히 도전할만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시클로’ ‘그린 파파야 향기’로 유명한 트란 안 훙 감독이 국내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국내에서 20일 개봉됐다.
"충분히 도전할만한 작품"이었지만 트란 안 훙 감독이 원작자의 허락을 얻어내기까지는 무려 4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라카미씨의 동의를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무라카미씨가 초록빛 영상이라는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는 스크립트와 예산을 제안하면서 길지만 자연스러운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은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좋은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당신이 그리는 그림이 바로 그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1천만부 넘게 팔린 원작의 유명세 때문에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는 "절대 아니다"면서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부담이 외적인 부담보다 훨씬 강했다"고 답했다.
트란 안 훙 감독은 "우울과 청춘이라는 감정에 주력했지만, 이 이야기와 더불어 와타나베의 여정을 다루는 멋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특별히 그 감정들에만 집중해서 작업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원작에서 주인공인 와타나베의 심리적 전개의 경계를 교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렸다"고 했다.
"처음부터 영화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장면은 나이 든 와타나베가 사막에서 일몰을 보면서 하츠미를 생각하는 장면이에요. 그 순간 책에 있던 말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요. 그것은 우리가 젊을 때 가졌던 갈망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통렬한 우울감이죠."
영화는 스무살 무렵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의 스무살은 어땠을까. "지루했죠.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전 그 나이에만 존재할 수 있었던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책의 우울감이 나에게 그토록 많은 걸 얘기하고 있었던 듯 해요."
영화에는 인물의 감정을 포착해 뛰어난 영상미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다. 특히 초원에서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과거의 상처를 털어놓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캐릭터의 감정을 반영할 만한 풍경을 원했어요. 나오코가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가진 분노를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이 장면에서 경치는 관능적이고 조화로운 느낌을 줘요."
그는 "관객이 영화를 예술로서 체험할 수 있도록 감정을 만들려면 반드시 특정 언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화 후반에서 와타나베와 레이코의 정사 후 나무 주변에 있는 와타나베와 나오코, 레이코 세 사람을 차례로 비춘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장면은 무의미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도 유용하지 않아요. 그러나 관객들은 이 장면을 통해 와타나베와 레이코가 나오코의 죽음을 애도하고 나서 스스로 인생을 정리했다고 분명히 느끼게 되죠. 그런 것들이 제가 영화의 구체적인 언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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