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통증’ 촬영현장 공개
한 남자가 시나리오를 읽는데 정신이 팔려 걸어오다 박스를 잔뜩 싣고 달리던 오토바이와 부딪힌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괜찮아요"라고 묻지만, 땅바닥에 넘어진 남자는 금세 일어나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꾸벅하더니 어슬렁거리면서 가던 길을 간다.
22일 오후 마포구 서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하고 권상우ㆍ정려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 ‘통증’의 촬영현장이 100여명의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권상우가 맡은 남순은 온몸의 감각을 잃어버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탓에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정려원이 연기한 동현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병으로 통증에 유독 민감하다. 이 두 남녀는 서로 의지하면서 난생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남순이 오토바이에 부딪혀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툭툭 털고 일어나 가는 장면. 이날 카메라가 돌아가는 실제 촬영을 하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리허설이 필요했다.
곽 감독은 처음에는 남순의 오른쪽 어깨와 오토바이에 실린 짐이 부딪히는 지점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오토바이가 좀 더 진행해도 된다고 주문했다.
"남순아, 아까보다는 표정 부드럽게 해라. 좀 멍하게." 5번의 리허설에 이어 마침내 본 촬영에 들어간다. "짐 다시 꾸리고 이제 테이크 갈게요."
실제 촬영이라 취재진에게 플래시는 터뜨리지 말라고 그는 당부했다. 감독 옆에서 모든 상황을 챙기던 조연출은 "음악이 깔리는 장면이라 셔터 소리 나오는 건 괜찮다"라고 귀띔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니 지나다니는 차나 오토바이 때문에 촬영이 지연된다. 이럴 땐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유리 너머로 촬영을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방해물이다. "카페 안 사람들 쳐다보지 말라고 해."
"남순아 한번 나와볼래. 오케이, 레디, 사운드, 카메라, 액션!" 여러 차례 반복했던 충돌 장면이 나오고 나서 감독은 ‘컷’을 외친다.
곽 감독은 이번에는 더 가까이서 크게 잡기로 한다. "다시 짐(박스) 싸고 타이트하게 앵글 바꿔서 한번 더 갈게." 카메라는 3m 정도 앞으로 나왔다.
카메라는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걸어가는 권상우의 뒷모습을 잡고 감독은 3번째 테이크에서 드디어 "오케이! 수고했어요"를 외쳤다.
그는 연출할 때는 ‘남순’이라는 극 중 이름을 부르면서 "시나리오를 뒤적거리면서 와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지만, 촬영이 끝날 때마다 번번이 "상우야, 괜찮아?"를 외치면서 배우를 챙겼다.
남순의 오토바이 충돌 장면 다음으로는 동현이 행복감에 겨워 남순에게 선물할 티셔츠를 고르는 장면이 이어졌다.
곽경택 감독은 주연인 권상우와 정려원에 대해 "이번 작품에서 다 자기 옷을 입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우 씨하고는 친분이 있어 결혼식에도 갔고 나중에 작품을 같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려원 씨는 걱정을 했는데 원래 캐릭터와 극 중 캐릭터가 잘 맞아요. 굉장히 편해요."
’친구’ 등 선이 굵은 남성 영화로 기억되는 곽경택 감독이 로맨스 영화를 찍는 것은 ‘사랑’에 이어 두번째다.
그는 "이번 영화는 인물들이 장애가 있긴 하지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밝다. 코미디가 있다"면서 "’사랑’보다는 부드럽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30대에는 사랑이란 감정을 다룬다는 걸 쑥스러워했는데 나이 먹으니 사람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통증’ 시나리오의 원안은 인기 만화가 강풀이 썼다.
지난 2월 10일 크랭크인한 이 영화는 이날이 46회차 촬영이었다. 일주일 뒤 촬영이 끝나며 8월말 개봉될 예정이다.
kimy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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