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한 멜 깁슨이 비버 손 인형을 통해 말을 하고 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남자가 비버(해리) 손 인형을 통해 가족 및 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질병에서 회복하는 드라마 ‘비버’(The Beaver-영화평 참조)의 주인공 멜 깁슨(55)과의 인터뷰가 지난 달 26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인터뷰장에 나온 깁슨은 최근 자기 동거녀에 대한 폭행혐의를 인정,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는데 이 날 인터뷰는 예상과 달리 아주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됐다. 깁슨은 과거 인터뷰 때 개인적 질문을 하면 상소리와 함께 황소 눈알을 굴리면서 역정을 냈는데 이 날은 그런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상당히 건전하고 온순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평소대로 눈을 부릅뜨고 안면근육을 실룩이면서 큰 제스처를 쓰긴 했으나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농담까지 하다가 테이블을 손으로 치면서 파안대소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각본을 읽었을 때의 반응은.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으면서 의미를 내포한 아주 간결하고 잘 써진 각본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조디(포스터-감독 겸 출연)와 함께 각본에 대해 대화를 했는데 난 조디의 관찰을 내 렌즈로 이용해 각본을 이해했다. 각본을 좋아해 즉석에서 조디에게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난 조디를 믿고 또 사랑한다.
*당신은 인터뷰에서 비버는 주인공 월터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대한 밴드-에이드라고 했는데 당신의 실제 생활에서의 밴드-에이드는 어떤 것인가.
-뜨거운 목욕을 하면서 면도하는 것이다. 또 발 마사지와 침 맞는 것이다. 난 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언제나 정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비버가 월터의 삶을 구해 줬듯이 당신의 삶의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랜 세월을 통해 남아 있는 친구들이다. 그들이 문제가 있을 땐 내가 그들 곁에 있고 내게 문제가 생기면 내 곁에 있어 주는 친구들이 있다.
*영화 촬영 전에 손에 인형을 끼고 실제로 말하는 연습을 해 봤는가.
-내 옷을 고치기 위해 세탁소를 찾아갔을 때 손에 비버를 끼고 한국인 주인 아주머니에게 영화에서처럼 비버를 통해 말을 했더니 아주머니가 어안이 벙벙해하면서 매우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주머니는 그것을 공손히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래서 난 내 음성으로 연기를 위한 연습이라고 말하고 감사하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그제야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그 전에 아주머니는 내게 진짜로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월터 역을 위해 실제로 어떤 인물을 모델로 삼았는가.
-우리는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의 기폭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이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어서 특별한 모델은 없다. 그러나 난 실제로 월터처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런 문제를 영화를 통해 조사하고 또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당신은 인터뷰에서 더 이상 연기 안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난 과거에 연기를 사랑했다. 지금도 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면 그 것에 대한 관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거와 같이 그렇게 연기를 많이 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카메라 뒤에 서고 싶다. 그 것이 지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전연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할 수도 있다. 난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영화 일에 종사할 것이다.
*어릴 때 무슨 장난감을 좋아했는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별로 잘 살지를 못해서 장난감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애완용 동물을 사달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내게 촌충을 대신 주었다. 난 어릴 때 막대기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당신은 가톨릭으로서 개인적 문제가 생길 때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는가.
-그들이 누구이든지 또 어떤 문화권에 살든지 그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땐 영적인 것을 찾게 마련이다. 전장의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당신은 연기가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믿는가.
-물론이다. 내가 젊은 배우였을 때 교육용 연극을 만들어 단원들과 함께 문제아들을 수용한 학교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연극 도중에 아이들이 무대로 올라와 우리와 함께 연기를 했다.
자기를 표현한다는 순수한 기쁨과 상상을 통해 일 한다는 것이야 말로 좋은 치료제이다. 연극 후 아이들은 모두 행복하고 또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내쫓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 연기 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큰 열매를 맺은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당신 아내 역의 조디는 당신과 저녁 외식을 하는 자리에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든 상자를 당신에게 줬는데 당신은 실제로 추억의 상자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가족 앨범 같은 자신에게 매우 가까운 사람들의 기념물들이다. 난 언젠가 공항에서 내 아이들의 어릴 때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도난당했는데 그 것이 내겐 가장 큰 분실물이다. 차라리 지갑을 가져 가지하고 생각했었다.
*조디와 일한 경험은.
-조디는 매우 똑똑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전적으로 믿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내 뜻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그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조디는 또 매우 빠르게 영화를 만들고 강한 비전과 결단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는 감정을 이해하며 극중 인물과 이야기와 영화 제작의 구조적 면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그저 순리대로 사는 것 아니겠는가. 너무 힘들게 계획을 세우지도 말고 또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라고나 할까.
*당신의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자식들은 매우 서민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은 자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주는가.
-내 아이들은 겸손하다. 그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와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어머니는 과거 내게 “네가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할 때면 늘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 것을 나도 아이들에게 물려주었다.
*당신은 영화에서 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왜 그런가.
-얘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늘 성장의 경험이거나 뚜렷이 기억에 각인된 경험들이다. 고통은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어떤 영화를 보던 간에 누군가가 어떤 형태로든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격렬한 경험을 겪고 있다. 그 것은 갈등인데 갈등 없이는 얘기도 없다.
*영화인이 아니었더라면 무엇이 되었을 것인가.
-셰프다. 난 늘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인다. 순식간에 50~60명분의 요리를 해낼 수 있다. 난 뭐든지 다 요리할 줄 안다.
*손에 전자담배를 쥐고 있는데 금연했는가.
-이것은 금연을 위한 하나의 좋은 단계이다. 타르도 없고 또 타인의 공기를 오염시키지도 않아 좋다.
*당신은 반유대주의자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무슨 조치라도 취하려고 한 적이 있는가.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차별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한 말들은 그냥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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