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중 실종된 프리모 병장 유해 북한서 귀국
부상당한 후 일본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때의 모습.
지난 12일 커네티컷 올드 쎄이브룩(Old Saybrook)에 한국전쟁의 영웅 프리모 칼나브치(Primo Charles Carnabuci) 병장의 유해가 북한 땅으로부터 귀환, 초등학교 어린이는 물론 온 시민들이 성조기를 흔들면서 홈타운 영웅을 맞이했다.
시민들은 시내를 행렬하는 군장의 마차를 향하여 ‘웰컴 홈’과 ‘We love you’ 등의 플래카드를 높이 들고 프리모를 환영하였는데, 프리모 병장의 장례식은 한국전쟁 참전재향군인회 주관 하에 성 요한교회에서 치러진 후 클린턴소재 성 마리아 묘지에 안장됐다.
1931년 1월 1일 하트포드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프리모는 에쎅스(Essex)로 이사한 후 1948년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자원입대,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 육군 제 8기갑연대에 배속되어 한국으로 파송 받아 참전했다. 한창 격전 중이던 9월 어느 날 인민군이 투척한 수류탄에 맞아 동료들과 같이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후퇴하는 인민군 뒤를 쫓아 계속 공격하여 승리한 공로로 청동 무공 십자훈장을 받았으며 일본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은 후 원대 복귀했다.
제 8기갑연대는 인민군과 전투 중 포위당한 한국군의 연대 구조 작전 중 1950년 11월 1일~2일 양일간 원산 인근 전투에서 중공군의 불시 침략으로 600여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었다. 이 전투에서 ‘전쟁 중 행방불명된 병사’로 간주된 프리모 병장의 소식이 부모 찰스와 매리 칼바느치에게 전달되었으며 가족들은 명예 상이기장을 받았었다.그 후 가족들은 곱게 접은 성조기 위에 그의 훈장과 수장, 일본에서 치료 받을 때 찍은 사진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60년 동안 매일 보면서 그의 생사 여부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어느 날 형 도미닉 칼바느치씨는 당국으로부터 ‘당신의 동생 프리모의 유해를 발견했습니
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5월 10일 비행장에 나가 동생 프리모의 유해를 인수 받았고 이틀 후인 5월 12일 군장의 예를 갖추게 되었는데 형 도미닉은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아직도 한국에는 낯선 땅 ‘잊을 수 없는 전쟁(Unforgotten War)’에서 실종된 미국 젊은이가 8,000여명이나 있다고 한다. <곽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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