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전쟁 전사자 기린 ‘데코레이션 데이’서 유래
메모리얼 데이 전후로 동네마다 참전용사들이 참여하는 메모리얼 퍼레이드가 열렸다.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미국의 현충일이다. 중부 뉴저지 각 타운에서는 오전 11시를 기해 묵념 행사와 참전 용사들이 참석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각 타운에 따라 요일 또는 월요일에 진행했는데 에디슨 타운쉽에서는 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두시까지 퍼레이드가 진행된 반면 인근 메타친 타운쉽에서는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에 퍼레이드가 있었다.
메모리얼 데이의 역사를 살펴보자. 1971년부터 국정 공휴일로 지정 되어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기념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 이 메모리얼 데이의 유래와 변천 과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노예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승전 한 북군 유니언 아미(Union Army) 전사자들을 기리는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최초의 공식 문건이 패전한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톤(South Carolina Charleston)에서 이 전쟁에 무고하게 희생된 2,800여명의 어린이들을 애도하는 신문 보도를 그 효시로 삼는 이들도 있다. 1865년 5월 1일자 기사였는데 이때 데코레이션 데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1866년 5월 5일에 뉴욕 주 워터루(Waterloo) 시에서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이
도시 출신이 존 머레이(John Murray)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시작했고 이후 매년 이 날
을 데코레이션 데이라 명명해 기념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데코레이션 데이는 그때까지도 앙금이 가시지 않은 남과 북이 서로 제각기 다른 의미로 기념하는 국지적인 행사였다. 여기서 왜 5월이냐는 의문이 다가온다. 이는 남군이 공식적으로 항복을 해서 전쟁이 끝난 1865년 4월 9일에 가까운 날을 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인데 사실 크게 만족스런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5월로 기념일이 정해진 이후 날자는 달랐지만 전통이 굳어져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1920년대까지 미 데코레이션 데이 기념행사는 국가 차원의 행사는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사실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는데 이 전쟁에 파병이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 되었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자 전 미국적 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시작하였고 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정신으로 1967년 이름도 메모리얼 데이로 바꿨다.
그리고 4년 후 1971년도에 이르러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의 발의를 국회에서 받아들여 국정 공휴일로 정하고 미국 역사상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유공자들을 기리고 현재 군에 복무하는 이들을 우대하는 의미의 메모리얼 데이 정신이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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