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국사 연구자인 힐디 강은 한국인 남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는 51명의 한국인들을 인터뷰했다. 힐디 강이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일제치하 민중의 삶을 복원하여 2001년 출간한 책 ‘검은 우산 아래에서’(Under the Black Umbrella·사진)가 한국어로도 번역돼 출간됐다.
저자는 시아버지가 식민지 시절 보낸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벼운 농담을 섞는 것을 보고 “일본의 존재가 드리워 놓은 그늘 밑에서도 종종 어떤 사람들은, 또 어떤 때에는,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로 식민지를 복원하는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일제 식민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로부터 구술사를 수집하여 일제 치하의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양한 출생지와 직업, 교육수준, 종교, 경제력 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식민지 시기별로 재구성해 들려준다. 근대화와 식민지의 격랑을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감상이 있는 그대로 펼쳐지는데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할 수 없는 끔찍한 식민지의 경험이지만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끔찍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일본인 학교에 다니는 몇 안 되는 조선인 여학생에 속했어요. 아버지가 서울 동쪽 외곽에 있는 일본인 병원의 유지 보수를 담당했기 때문이었지요. (중략) 그래서 일본에 다녀올 때면 그 사람들은 언제나 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 선물을 가지고 왔지요. 어떠한 차별도 느끼지 못했어요.”(132쪽)
“참배는, 가만 보자, 30분쯤 걸렸어요. 무슨 물을 붓고 손바닥을 마주치고, 그러고는 다시 내려와서 식량 배급표를 받는 거예요. 나중에는 창씨개명을 했어요. 나는 그저 남편이 하는 대로 따랐지요. 신경을 안 썼어요. 그냥 식량 배급표를 받기 위한 것이었죠.”(209쪽)
그런가 하면 여성 정치가 박순천(1898~1983)씨의 조카 박성필씨가 들려주는 박순천의 독립운동 활약상이나 일제에 저항하는 모임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살았던 이하전씨의 회고, 고베 조선소로 강제징용을 갔던 정재수씨의 탈출기 등은 치열하게 일제시대를 보낸 이들의 기록이다.
역자인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시사와 미시사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삶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처럼 펴냄. 정선태ㆍ김진옥 옮김.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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