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금이 정말 제값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몇 배가 올라 이에 투자한 사람은 톡톡히 재미를 누렸으며 점차 힘들어지는 세상살이를 보면 앞으로도 계속 상승곡선을 나타낼 것 같다.
어디 금값뿐이랴. 대부분의 물건들은 이름과 실체, 값과 질이 그런대로 균형을 이뤄왔지만 유독 사람만은 양자 사이에 날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이름만을 격상시킨 ‘명칭 인플레’가 한 몫을 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언제부터인지 식모는 가정부, 청소부는 환경미화원, 운전사는 기사양반, 손님은 사모님이나 사장님 등등으로 바뀌었는데 그렇다고 기술이 나아진 것도 대우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직장 역시 부사장이니, 매니저니, 부장이니 타이틀을 올려놓아 책임만 늘었지 하는 일은 매한가지이다. 이런 명칭은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살리는데 좀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얻은 것은 없어 속빈 강정이다.
한인들의 회합 장소에서 ‘회장님’ ‘이사님’하고 부르면 절반 이상이 뒤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한인사회에는 유독 감투 쓴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명함이나 경력에 현직이 아니라 전에 가졌던 직함까지 훈장처럼 나열해 놓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이 전직 임원이나 감투 쓴 사람으로 채워져 있기 마련이다.
회장이나 이사장도 나이가 들거나 오래 몸담고 있다 보면 자연 돌아오는 자리인데 남보다 우월하거나 실력이 있어서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심리는 명품으로 신분상승을 꾀해 콤플렉스를 메우려는 철딱서니 없는 자들과 비슷하다. 이름은 단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겉모양일 뿐 실체는 내면에 숨겨져 있다는 보편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에 취급업무가 상당부문 겹치는 두 부류의 전문인들이 이름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다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려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공인회계사’는 한국에서 ‘Certified’를 ‘공인’이라고 번역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한국식 이름이지 미국 명칭이 아니다.
한국에서 ‘공인’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도 상장회사 감사, 공기업 회계지도 같은 비중 있는 업무를 다루는 국가나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회계사이기 때문에 일반 회계사와 구별코자 붙여졌다. 한국의 공인회계사는 자동적으로 세무사 자격도 갖게 되지만 미국 CPA와는 달리 세금보고나 북 키핑 따위의 일은 취급치 않고 주로 세무사들에게 맡겨 공생을 도모하고 있다.
‘Certified=공인’을 주장하려면 공증인(Notary Public)도 공인된 증인이기 때문에 똑같은 용어를 써야 논리에 맞을 것이다. 따라서‘Certified’를 ‘공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전인수식이며 단어 어디를 찾아봐도 그런 뜻이 없는 보통 형용사이다.
CPA와 세무사(EA)는 적이 아니라 동업자이다. EA들도 굳이 ‘공인’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연방’ 세무사 또는 ‘국세청’ 세무사 같은 이름을 써도 좋지 않을까? 결국 밥그릇 싸움인데 소탐대실이라고 양측 모두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놓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름이 그럴 듯하다고 권위가 높아지거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닐진대 이런 시간에 자신들의 업무에 충실하고 실력을 쌓아 공중으로부터 더 인정을 받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우선순위가 아닐까 싶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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