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리뷰 | LA필 ‘차이코프스키 5번 심포니’ 연주회
LA 필하모니의 캐주얼 프라이데이 연주회가 끝난 후 구스타보 두다멜이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학 3학년 때 매일 차이코스프키의 5번 심포니를 들었었다. 그때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 심취해 있었는데 책을 읽을 때면 무조건 5번 교향곡을 전축에 걸어놓곤 했다. 왜 그랬었는지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는 않는데, 아마 동시대를 산 러시아 작곡가와 소설가라는 점에서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상당히 정확한 판단이어서, 암울하고 운명적이며 비감에 젖은 교향곡과, 엄청나게 길고 서사적이며 어둠침침한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그 분위기가 너무도 잘 어울려서 내게는 마치 하나의 작품인 것처럼 겹쳐져 각인돼있다.
한창 인생이 심각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이라 지금도 어디서나 차이코프스키 5번 선율이 들려올 때면 ‘죄와 벌’ ‘백야’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과거’ 때문에 이 곡이 연주되는 콘서트는 빼놓지 않고 가려고 하는 편인데 가장 최근에는 지난 14일 디즈니 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하모닉의 연주로 다시 들었다. 4번이나 6번(비창)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요즘 갈수록 자주 연주되는 5번 심포니를 두다멜은 2005년 미국에 데뷔하던 할리웃보울 무대에서도 연주했었다.
그 때의 연주를 듣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날 두다멜의 연주는 내가 30년전 심취했던 5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물론 그 옛날의 것과 똑같은 연주는 이제껏 들은 적이 없으니, 그것이 누구의 연주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들은 것은 표준교과서처럼 뇌리에 박히기 때문에 자꾸 그 느낌을 되살리는 연주를 찾으려 애쓰는 것도 사실이다.
두다멜은 그러잖아도 감정적인 이 곡에 너무 많은 감정을 담아 이끌어갔다. 아름다운 호른의 독주가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아주 느리게 늘이고, 반대로 관악과 타악이 소리치는 부분들은 아주 강한 포르테와 스피드로 몰아치는 등 슬픔과 기쁨을 완전히 대조적으로 해석한 연주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진적으로 올라가다가 절정에 이르면 가슴이 터질 듯 격앙된 선율을 뿜어내는 것이 특징인데, 두다멜은 바로 그렇게 격정적이고 드러매틱한 클라이맥스로 연주를 끝냄으로써 청중들을 흥분의 도가니, 기립박수와 야단법석으로 몰아넣었다. 강렬하고 환희에 찬 그의 음악은 확실히 매혹적이었다.
이날 연주는 LA필의 ‘캐주얼 프라이데이’(Casual Fridays) 프로그램이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두 청바지, 티셔츠, 블라우스 등 자유스런 ‘사복’을 입고 나와 연주했으며 두다멜도 검은색 캐주얼 바지와 셔츠를 입고 지휘봉을 휘둘렀다.
또 연주회가 끝난 후 두다멜과 데보라 보다 LA필 회장이 관객들과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두다멜에게 칭찬과 감사를 보내느라 아우성이었다. 두다멜은 짧은 영어로 6개월 된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지휘를 하더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로부터 거의 모든 음악을 악보없이 지휘할 수 있는 그의 암보능력, 엘 시스테마 같은 청소년음악교육 시스템을 미국에 도입하는 일에 관한 것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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