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 생명이 있다. 어떤 언어들은 많을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전성기를 지내고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화로, 인두, 다듬잇돌…이라고 하면 어린이들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모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은 새 말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 중에 ‘손 글씨’라는 말이 있다. 새 낱말이라기보다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만들거나, 기계로 친 글씨와 구별하기 위한 말이다. 전에 손 글씨라고 하였다면, “그럼 몸의 다른 부분으로 쓴 글씨와 구별하는 말이냐”는 반문이 나왔을 것이다.
요즈음 손 글씨는 점점 희귀해지고, 마치 시대에 뒤진 글씨 같은 느낌도 준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중학생의 손 글씨는 너무 서툴러서 겨우 형태를 알아볼 정도였다.
손 글씨가 드물어지자 ‘글씨는 그 사람 자체이다’ ‘글씨의 품격’ ‘글씨를 보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등의 표현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렇게 손 글씨를 쓰고, 읽는 기회가 적어지면서 손 글씨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또한 메모와 편지는 손 글씨로, 사무적인 서류나 기록들은 타자 글씨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지혜도 얻었다.
종이 위에 계산 연습을 수없이 거듭하여 수학적 이치를 깨달은 후 계산기를 이용하면 효과적이다. 손 글씨 쓰기에 익숙해진 후 글씨를 기계로 치면 필순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를 구성한다. 타자 글씨는 손 글씨가 기초이다.
‘종이책’이란 말도 시대의 산물이며, 전자책과 대조를 이룬다. 동물의 가죽
에 글씨를 쓰거나, 댓조각에 글씨를 적고 그것을 엮어 만든 죽간을 거쳐 생산된 종이책은 인류문화의 금자탑이었다.
그런데 이제 전자책의 출현으로 그 생명의 길이가 분명치 않다. 종이책을 폈을 때 느껴지는 그윽한 애정과 달리, 밝은 빛 위에 떠오른 글씨들은 차갑게 똑똑하다. 많은 책을 탑재한 전자책은 휴대품으로 간편하고 값이 저렴한 장점이 있다고 소개한다.
우리는 문화 전환기에 서있음을 즐기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지나가는 문화를 붙들어도 한계가 있고, 잽싸게 앞서려고 너무 새 물결을 타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글씨를 쓰는 것은 사물에 대한 기록이나 자신의 지나가는 느낌을 글로 남기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손글씨도 좋고, 타자글씨도 좋다. 책을 읽는 목적은 책 종류를 선택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 책의 종류를 선택하면 어떤가. 선택의 범위가 넓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변화와 활기를 준다.
손글씨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연필글씨, 붓글씨, 펜글씨...등 필기도구에 따른 것이 있고, 크게, 작게, 예쁘게...쓰는 글씨 모양의 다름이 있고, 디자인 글씨, 개성적인 글씨 등 창조적인 글씨도 있다.
책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종이책, 전자책, 헝겊책, 얇은 책, 두꺼운 책, 작은 책, 큰 책, 단행본, 총서, 전집 등이 있다. 이렇게 많은 중에서 선택하며 개인적 행복을 느낀다.
글씨 쓰기나 책읽기는 교육의 기본이 되는 도구이고 방법이다. 두 가지를 즐겁
게 생활화하고 습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부모나 교사의 몫이다.
요즘도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작품 제작과정이 남다르니 특색 있는 창작품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분은 컴퓨터로 글씨를 치는 속도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글씨 쓰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며, 읽고 싶은 내용의 책을 종이책이나 전자책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자유를 향유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여기에 도달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단계가 있다. 어린이에게 책을 고르라고 해본다. 어린이는 물끄러미 책표지만 바라보고 있다. “퍽 재미있어!”라고 말해준다. 그때서야 어린이의 눈이 글을 따라 움직인다.
어린이에게 필기도구와 종이 한 장을 준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써볼까?” 라며 종이를 가리킨다. 그러면 어린이가 글쓰기를 시작한다. 어른이 소위 ‘마중물’이 되어주어야 한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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