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줘 고마워!”
50년만에 기적적으로 해후한 두 자매의 심정은 똑같았다. 철부지 어린 시절 헤어져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비록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이지만 처음으로 얼굴을 본 자매는 서로의 생존에 감사하며 반가움의 눈물을 쏟았다.
글렌버니 거주 김이순씨(60)가 동생 현순씨(56)와 헤어진 것은 10세 때였다. 전남 여수에 살던 자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계모가 장흥의 어느 버스 종점에 있던 한 가정에 버리다시피 갖다 맡겼다. 생모는 김씨가 7살 때 집을 나갔다.
장흥 집에서 이틀 가량 머물던 김씨는 혼자 해남의 친척집에 보내져 한 달가량 생활했으나 동생이 보고 싶어 다시 돌아왔지만, 동생은 그 집에 없었고 주인은 동생의 소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김씨는 근처 신발가게 주인집에 식모로 들어가서 생활하며 동생을 찾았지만 수개월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자 할 수 없이 서울 큰집으로 올라갔다. 서울에는 삼촌과 고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큰집은 물론 삼촌과 고모 모두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 결국 서울시청 앞 거지 소굴로 들어갔고, 거기서 한 할아버지를 만나 그 집에서 다시 몇 달간 생활했다. 그러다 12살 때 식모살이를 시작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21세에 미군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1972년 미국으로 왔다.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군부대의 장교클럽에서 잡일을 하면서 미국생활을 출발한 김씨는 세탁소, 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 그동안 남편마저 작고한 김씨는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미국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김씨는 동생을 찾으려했지만 방도를 알지 못해 한국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무턱대고 찾아가 동생의 소식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방송국을 소개받기도 했지만 전화연결이 잘 되지 않아 포기했다.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는데 이달 초 세인트 루이스에 사는 친구가 우연히 KBS 방송의 ‘그 사람이 보고싶다’라는 프로에서 동생이 찾는 것을 봤다며 전화를 해왔다. 김씨는 즉시 방송국에 연락, 프로그램 담당자들과 인적사항 등을 확인한 결과 자매임을 확인했다.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벅찬 감동과 기쁨을 나타낸 김씨는 서로의 이름과 부친의 함자로 자매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사진으로 본 동생의 모습이 자신과 꼭 닮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자매는 지난 11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된 프로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통화로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스튜디오에 나온 동생이 아나운서의 거듭된 요청에 “언니야”라고 떨며 불렀지만 김씨는 목이 메어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김씨뿐 아니라 자매의 상봉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새벽빛침례교회(최정규 목사)와 예사랑교회(강장석 목사) 교인들도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동생 역시 자리가 잡히자 예전 기억을 더듬어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언니의 행방을 수소문했다고 했다. 그러다 방송을 찾았고, 방송 나간지 1주일만에 언니를 찾았다. 동생은 어릴 때 언니를 찾다 주인에게 많이 맞았다고 해 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언니는 “못 찾아서 미안하다. 살아있어줘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오는 12월 24일 군포에서 식당을 하는 동생을 찾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다. 1남3녀인 조카들과도 처음 만난다. <박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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