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일부터 시작된 재외국민 유권자 등록률이 저조하다. 등록 17일이 지난 현재 전 세계에서 불과 1만여 명이 신고했을 뿐이다. 유권자 등록률이 신통치 않자 중앙선관위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의 정치권이나 언론도 얼어붙은 해외 표심을 우려하고 있다. 관계당국은 부랴부랴 재외선거 홍보강화 방안을 강구하는 등 부산이다.
재외 유권자 등록률이 형편없이 낮을 것임을 재외동포들은 모두가 예상한 것을 그들만 몰랐던 모양이다.
2007년 6월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의 한국선거에서 참정권 제한은 ‘헌법 불일치’란 결정을 내린 이후 진행돼온 재외선거 준비과정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한국의 정치권과 선관위가 책상 위에서 주무르고 만지고 굴리다 기형아를 낳을 준비를 하는 꼴이다. 사상 처음 실시되는 재외선거라고 애드벌룬을 띄웠지만 정작 유권자인 재외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해외 실태조사는 부실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돌아다보면 지난 4년간 국회 차원에서 딱 두 번을 다녀갔다.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한 차례, 정치개혁특위에서 한 차례다. 그것도 동포지도자 간담회 방식으로 밥 한번 먹은 게 고작이다. 해외를 방문하는 여야 의원들은 립 서비스만 늘어놓았지 인천공항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신들이 쏟아놓은 말들을 다 잊어버렸다.
선거 준비와 실행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인 선관위도 마찬가지다. 실태조사단 파견은 한 두차례 불과했고 모의선거도 지역마다 한 두차례 있었다. 그들이 만난 해외동포 지도자는 선거와 관련 없는 시민권자가 전부였고 재외선거에 편승해 적극 활동하는 ‘동포 정치인’들의 의견이 재외 유권자들의 의견으로 포장됐다.
형식적인 해외 실태조사는 부실선거를 낳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부실의 증거’는 해외 유권자 수다. 선관위는 외교부의 집계(?)를 바탕으로 재외선거인 수를 약 24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외교부 통계라는 것은 현지 한인회 등이 자의적으로 부풀린 것을 그대로 반영한 추산치에 불과하다. 미 센서스와 미 행정부의 공식 통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거의 가장 기초가 되는 유권자 수부터 과장되고 잘못 됐으니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저조한 유권자 등록도 부실 준비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선관위는 유권자 등록률을 40%로 예상해 발표했다. 해외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란다. 여론조사가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진행됐는지는 금시초문이나 그 답변을 곧이 해석한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을 것임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오판도 한몫하고 있다. 당국은 ‘판’만 벌여놓으면 웬만큼 등록하고 투표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이 앞섰다. 동포사회에서 너도나도 정치단체들을 조직하니 과열선거가 될 것이라 과신한 것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지 정부와의 법적, 외교적 마찰이나 선거 부정 등 후유증을 지나치게 우려해서 아예 재외공관 옆에 사는 재외국민 아니면 투표하기 힘들게 제도를 옭아매었다.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 떠나온 이민자인 해외동포들은 안다. 학업을 따라가기 위해 밤샘 공부하는 유학생들에게, 미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주권자, 불법체류자들에게 어차피 재외선거란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란 것을. 투표할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선관위가 재외선거를 위한 홍보 강화와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려한다는 소식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재외선거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우선 선거참여를 이끄는 홍보를 늘려야 한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공부와 생업을 제쳐놓고 달려갈 동기와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다음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재외 유권자들의 편의를 위해 우편 등록, 인터넷 등록을 허용하고 투표소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적극적인 의사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재외선거가 부실하게 출발했다 해서 옥동자를 낳지 못하란 법은 없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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