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지난 1년은 매우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작년 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벤 알리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쫓아냈으며 예멘의 살레를 축출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개 같은 최후를 맞았고 2001년 무고한 미국인 수 천 명을 죽이고 낄낄거리던 오사마 빈 라덴은 비명횡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가장 많은 한국인을 죽인 김정일도 죽었다.
지난 한 해가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가득 찬 해였다면 새해는 예정된 사건들로 가득 찬 1년이 될 것이다. 우선 한국과 미국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중국도 임기가 만료된 후진타오가 주석 직을 물러나고 시진핑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이다. 러시아와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한반도 주변 국가의 지도부가 이처럼 일제히 교체되는 것은 기억에 없는 일이다. 오래 전부터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해 온 중국은 새 주석이 들어앉더라도 정책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미국은 대선과 의회 선거 결과에 따라 국내 정책은 상당한 변화가 있겠지만 한반도와 관련된 정책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이나 대대적인 원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다.
러시아도 얼마 전까지 대통령 선거는 요식 행위고 푸틴의 사실상 종신 통치가 확실시 됐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꼭 그렇게 되란 법은 없는 것 같다. 1905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무능한 황제의 하나인 니콜라스 2세는 “빵을 달라”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에게 총알을 안겨줬다.
그러면서 시위는 수그러들고 300년 간 계속된 로마노프 왕조의 통치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12년 뒤 볼셰비키 쿠데타로 황제 일가족은 체포되고 얼마 되지 않아 지하실에서 모두 총살되고 만다. 국민들을 행해 쏜 총알이 결국 제 가슴으로 돌아온 셈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인내심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한 번 분노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 번 총선에서 저질러진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그 동안 묵묵히 침고 견디던 러시아 인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연일 수 만 명의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번 시위가 1905년의 재판이 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북한은 10여 년 간 철권통치를 하던 김정일이 죽고 어린 아들이 보위를 이어받았지만 기본적인 정책의 골격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봐야 한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김정은이 아버지 정책을 바꿀 능력도 없을뿐더러 능력이 있더라도 핵을 담보로 주변국의 원조를 뜯어내는 것 이외에 북한 지도부가 생존할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 체제가 무너질 경우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거기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고 있는 중국은 북한 붕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역시 북한이 무너질 경우 수 천 만의 헐벗은 동포를 먹여 살려야 하는 한국도, 핵 등 대량 살상 무기의 통제 불능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도 북한의 안정을 바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 체제는 당분간 그대로 갈 것으로 봐야 한다.
새 해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한국이다. 안철수를 비롯한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가 집권하더라도 실정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권과 거리를 두려 할 것이 분명하다. 돈이 넘치는 한국 대기업과 높은 물가와 낮은 소득 증가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과의 격차는 복지 확충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다. 박근혜 자신도 ‘복지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로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야당에 뒤지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천체의 움직임은 점치는 것이 가능하지만 코앞에 있는 인간 사회는 예측 불가능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신만이 안다. 그래서 역사는 흥미롭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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