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서 당당히 뿌리내린 한인들의 소식을 들을 때 너도나도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는 ‘정체성’이 궁금하고 아쉬움이 든다. 반면 한국에서 소식을 접한 이들이 ‘겉은 한국사람이지만 속은 미국인’이라고 폄하하면 속상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란 삶은 존재하는데 이를 설명할 명확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인사회 이민사는 109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미국은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고 ‘뿌리’가 담긴 가치를 소중히 전수한다. 후세대에게 열정을 다해 선대의 삶을 전하는 자원봉사자를 만날 때면 그 열정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다. 한 예로 중국, 베트남, 남미계 등은 이중 언어를 철저히 교육한다.
하지만 한인사회는 100여년 동안 축적된 ‘우리네 미국 이야기와 한국어’가 지닌 힘을 등한시 한다. LA, 리버사이드, 중가주 다뉴바?리들리 등 남가주 주변에는 웃음과 눈물이 묻어나는 한인 선조들의 유적이 넘치지만 1.5세, 2세 청소년들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른다.
뿌리교육에 헌신해 온 인사들은 “한국의 5,000년 역사, 한류 등을 자랑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국 이야기”라며 “미국에서 자라는 한인 청소년에게 우리네 이민사를 가르치는 것이 정체성 형성과 자긍심 고취에 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민 선조들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한국 산업화 시절마다 조국의 독립과 발전에 헌신한 역사를 배운 청소년들은 경외심과 자긍심을 갖는다. 이들이 한국어 배우기에 적극 나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인 이민사와 한국어가 한인사회 단합과 발전을 담보하는 ‘자산’이란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뒷전이다. 한인사회는 인력과 예산부족에 시달리는 주말 한국학교가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공관이 나서서 이민사 현장체험이나 교육 프로그램 개발하는 것은 수년째 말뿐이다.
한국 국무총리실이 주도하는 해외 한국문화원-한국교육원 통합 실무 작업도 실망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합이 지지부진하다고 질책하자 국무총리실은 부랴부랴 LA 등 해외 한인단체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통령에게 보고될 설문 18개 문항 중 15개가 이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기관의 ‘간판’(명칭)과 관련된 질문으로 도배됐다. 통합기관과 한인사회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인 정체성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효과적인 한국어 교육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미국 내 한인 인재 두각과 한미관계 증진을 감안한 정책 입안자라면 한국문화원과 한국교육원 ‘본연의 역할과 활용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고민했어야 했다. 무조건 통합만 강조한 정책 결정자의 혜안 부족과 정책 입안자의 철학 부재가 아쉽다.
김형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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