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 “개방신호” “별것 아니다” 갑론을박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가 등장한 공연장에 김정은이 신원미상의 여성과 함께 참석했다.
북한 여성의 치마길이가 서방측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해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살피고 있다. 이들은 요즘 평양 도심에 등장한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차림 여성들이 찍힌 몇 장의 사진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걸 밴드·미키 마우스·햄버거 식당·영화‘로키’까지
“김정일과는 전혀 다른 리더십 보일 것” 추측 무성
핵 정책 등은 유지…“외부 문화충격 완화 노린 듯”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여성 패션은 전통 주름 한복이거나 우중충한 ‘모택통 작업복’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북한의 심장부에 이 같은 기류를 거스르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이 사진 분석에 열을 올리는 사이 북한 중앙 TV 방송이 여성 밴드의 공연을 감상하는 김정은의 동영상을 내보냈다. 짤막한 영상에는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이 ‘긴 다리’ 소녀들로 구성된 ‘걸 밴드’에 양 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서구식 찬사의 제스처를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북한 관측통 사이에서 또다시 불난리가 났다. 안무하듯 모든 메시지를 철저히 구성하는 북한의 정치적 시스템에서 보란 듯 평양 도심에 등장한 짧은 치마와 걸 그룹은 물론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 외에 영화 ‘로키’의 영상까지 총동원된 콘서트가 과연 어떤 노림수를 가진 것인지를 두고 진지한 논의가 벌어졌다.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김정은이 파격적인 모습으로 ‘출연’한 콘서트가 서방을 향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시사한다는 긍정적인 해석과 평양이 의도적으로 흘린 ‘패션 성명서’는 불만에 가득 찬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내수용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고유환 동국대학 교수는 평양이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쪽에 표를 던졌다
그는 북한이 보내는 신호는 ‘개방’(glasnost)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김정은 개인의 무력한 꿈이 아니라 구 실세의 2세들이 장악한 공산당의 지지가 뒷받침된 ‘변화’라는 풀이다. 당의 중앙부에 포진한 신세대 엘리트들은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외국물을 먹었고 중국식 경제개혁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보스턴 소재 ‘플레처 스쿨 오브 터프츠 유니버시티’의 북한 전문가 이성윤씨는 김정은이 청소년 시절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 실질적인 변화의 믿음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유럽의 코스모폴리터니즘에 대한 노출이 독재주의의 치료약이 될 수 있다면 20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4년을 보냈던 폴 포트는 변화의 기회를 놓쳤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폴 포트는 ‘킬링필드’로 널리 알려진 캄보디아 대학살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다.
북한 분석가들이 사진 몇 장과 동영상을 놓고 법석을 떠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세계는 김정은에 대해 무지하다.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조차 모른다. 그저 20대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결혼 여부도 불분명하다. 최근 그와 함께 자주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해서도 누이에서, 부인, 여자 친구에 이르기까지 설이 분분하다.
극심한 정보난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김정은과 그가 물려받은 핵 개발 프로그램이 인접국들은 물론 서방세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제까지 주워 올린 퍼즐 조각들은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 김정일과 대단히 다른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김정일은 풍자적 만화영화인 ‘사우스 팍’에 놀림감으로 등장할 정도로 음침한 인상을 갖고 있는데 비해 아들은 그보다 훨씬 접근하기 쉬운 듯이 보인다.
평양이 공개한 사진 속에서 김정은은 공장직원들, 혹은 군인들과 팔짱을 낀 다정한 모습을 곧잘 연출한다. 그는 아버지에 비해 외국 문화에 겁을 덜 집어먹을 뿐 더러 실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지난 4월 로켓 발사실험이 실패로 끝났을 때 김정은이 직접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그가 선친과 조부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증거 역시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강군 정책이라든지 핵개발 정책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수시로 경고를 보내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4월 미국과 새로 체결한 식량지원 프로그램이 없던 일이 되리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의 유일한 우방인 중국이 나서 자제를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초반부터 할아버지를 모방하려 들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일성은 김정일보다 인기가 높다. 김정은의 할아버지 ‘따라 하기’는 손뼉을 치는 방식과 옆머리를 높게 치켜 깎은 헤어스타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 역시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영양상태 좋아 보이는 행복한 표정의 아이들과 사진 찍히기를 좋아한다. 모방학습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모방과 동시에 그의 독자적 리더십 스타일을 조각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젊고 실리적인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연세대 북한 문제 전문가 존 디루리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해 김정은은 도전과 문제, 심지어 실패까지도 보다 선선히 시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그는 어린 나이와 무경험이라는 자신의 잠재적 약점을 역동성과 에너지라는 정치적 강점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려 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피자,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판매하는 서구식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국영방송을 통해 양식당을 방문한 사진이 공개됐다. 그리곤 이번의 파격적 콘서트 영상이 뒤따라 나왔다.
미키 마우스의 출현은 의미심장하다. 김씨 왕조를 추적해온 북한 전문가들은 미키 마우스란 서구문화의 상징이라고 강조한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2001년 위조 사증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붙들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그는 도쿄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분석가들은 이 문제로 열이 받친 김정일이 김정남의 후계자 지위를 박탈해 버렸다고 말했다.
미키 마우스, 걸 밴드, 로키 영상의 등장은 김정은이 할리웃을 북한으로 끌어들인 것이고 이는 “조국의 이익에 맞는다면 불구대천 원수인 미국의 문화까지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탈북자들이 북한 내 가족들에게 몰래 들여보낸 셀폰과 중국을 드나들며 바깥세계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들은 상인들, 남한의 영화와 TV쇼 디지털 복사본 등이 가져올 외부 충격을 둔화시키려는 계산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세계가 북한 여성이 치마길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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