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사고 후 일본쌀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 커져… 월마트 등 외국쌀 취급업소 늘어
디플레이션 따른 소득 감소도 한몫
젊은 층 입맛 변화로 쌀 소비 감소
쌀시장 개방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
<도쿄> 월마트가 이곳에서 값싼 중국산 쌀을 판매하기 시작한 지난 4개월 동안 이 거대한 미국 유통기업은 진열대에 계속 쌀을 쌓아 두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체인인 베이시아 역시 올해 처음으로 중국산 쌀을 판매하고 있는데 금방 동이 나곤 한다. 스시 체인인 카파 크레아테는 캘리포니아산 쌀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에서 가장 큰 고기덮밥 체인인 맛수야는 일본과 호주산 쌀을 섞어 사용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할인 스토어를 운영하는 다이코쿠텐 부싼은 안정적 공급망만 확보되면 수입쌀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입이 줄어들고 지난해 쌀의 주요 생산지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로 방사능 오염 공포가 커지면서 점차 많은 일본 소비자들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격이 비싸고 고급인 일본산 쌀 대신 일본시장의 엄격한 보호막을 뚫고 수입된 중국과 호주, 미국산 쌀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도쿄 중심가의 월마트에서 샤핑을 하던 파트타임 사무직원 카나 사이토(29)는 “과거에는 수입쌀을 고려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2킬로짜리 중국산 쌀을 사려했으나 다 팔려버렸다. 카나는 “국내산이라는 레이블이 더 이상 예전 같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농무성은 쌀 수입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밝힌다. 일본은 778%라는 살인적인 관세를 통해 자국 쌀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이후 일본은 약 70만톤의 무관세 쌀을 수입했는데 이것은 대부분 곡물사료와 비축용으로 사용돼 일본쌀과 직접 경쟁을 하지 않는 품목이다. 일부 수입쌀들은 값싼 식당들과 도시락 업체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집에서 밥을 하는데 수입쌀을 찾고 대형 체인들이 수입쌀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이들은 말했다.
일본 정부가 허용한 소량의 소매용 수입쌀을 놓고 소매업체들과 식당들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쌀은 총 1만톤으로 연간 900만톤이 팔리는 일본 쌀시장에서 지극히 미미한 비율이다. 지난 3월 니케이 신문이 60개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약 70%가 구입할 수 있다면 수입쌀을 취급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월마트 대변인은 “더 많은 수입쌀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과 비즈니스들의 수입쌀 수요가 상당히 늘어날지는 불투명 하다.
또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한 일본 농업계는 시장개방 반대 로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 경제, 심지어 국가 정체성까지 쌀 경작과 연관돼 있는 일본에서 소비자들이 점차 수입쌀을 찾는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고베 대학원의 도시유키 카코 석좌교수는“ 일본이 수입쌀에 시장을 개방한다면 전후 일본사회의 대단히 큰 변화로 볼 수 있다”며“ 지난 수년간 소비자들의 태도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의 쌀 재배업자들은 일본 쌀시장의 정치를 실감하고 있다며 오래 전 일부나마 완화됐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도쿄에서 간혹 쌀 시식행사를 갖고 있는 미국 쌀 연맹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일본쌀과 수입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아니라 쌀의 수요가 시장을 결정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와 인근지역 농부들에게 수입쌀 문제는 가장 나쁜 시기에 제기됐다. 지난해 농부들은 15년에 걸친 연구 끝에 최고급 국내 쌀 두 종을 합친 새로운 품종의 쌀을 개발해 심었다. 품종의 이름도 ‘하늘이 내린 쌀’이라는 뜻의 ‘텐노 쭈부’로 지었다. 관계자들은 이 품종이 일본인들의 고급 국내 쌀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3월 쓰나미에 이은 원전사고로 후쿠시마 일대 1만8,000에이커 이상의 땅이 못쓰게 돼 버렸다.
일부 쌀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면서 새로운 쌀의 화려한 데뷔는 물 건너갔다.
한 농부는 “이번 쌀은 정말 최고지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후쿠시마에서 40마일 정도 떨어진 다이치에서 9대째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지난해 그가 수확한 새로운 품종은 다행히 세슘 같은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출시됐지만 가격은 그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올해 이 지역 농민들은 논에다 세슘을 흡수하는 물질을 뿌리고 새 품종의 수확량이 지난해의 20배에 달하길 기원하고 있다. 지역 관리들은 30억엔짜리 새 장비들을 도입해 쌀자루 하나하나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할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당국은 국내산 쌀이 안전하다고 소비자들을 확신시키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한 지역과 인근 지역 쌀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불안이 여전한 상태다.
또 하나의 커다란 걱정거리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경제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고가제품 구입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한 경제단체 조사에서 낮은 등급의 국내 쌀 판매는 급등하고 보다 고급스러운 브랜드 판매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특히 젊은 층과 부유하지 않은 샤핑객들이 낮은 가격의 대안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런 트렌드를 부채질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쌀 소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생선과 쌀 중심의 식단이 빵과 파스타, 피자 같은 식단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 1960년대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경제 전문가는“ 계속된 디플레이션은 소득 저하를 의미하고 일본인들은 전처럼 쌀에 대해 까다롭지 않다” 고 지적했다. 그 결과 수입쌀보다 몇 배나 비싼 일본쌀을 구매해 주던 일본 사회의 쌀 농부들에 대한 지원은 현재 시험대에 올라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소비자들은 10킬로에 5,000엔(약 62달러) 하는 일본쌀 자포니카를 기꺼이 구입했다 이 가격은 수입쌀에 비해 10배가량이나 비싼 것이다. 지난 1993년 쌀 흉작으로 외국으로부터 긴급히 쌀을 수입해야 했을 때도 일본인들은 수입쌀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월마트와 베이시아, 맛수야 등은 수입쌀에 대한 고객들의 불평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다. 맛수야 대변인은“ 대부분의 손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