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의 법칙이다.
올림픽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의의는 그러나 퇴색된 지 오래다.
메달이 중요하다. 그것도 금빛 메달이. 승리지상주의가 판친다고 할까. 국가 간의 경쟁이 노골화된 현대의 올림픽 경기에서 기억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최종승자, 금메달리스트다.
아직도 손기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비록 일제치하였지만 한인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도 그렇다.
금메달의 영광을 딴 한국인 올림피언은 이번 런던 올림픽 전 까지 93명에 이른다. 그들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존재가 은메달리스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잘 기억하지 않는다.
혹시 장은경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어쩌면 양정모에 앞서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던 그였다.
1976년 7월31일 몬트리올 하계올림픽 유도 라이트급 결승전. 경기가 끝나고 심판의 판정만 남았다. 주심은 장은경 선수의 승리를 선언했다. 순간 코리아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엎었다. 그러나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주심은 판정을 번복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번복으로 금메달의 영광을 3분 만에 앗긴 것이다. 은메달에 머물게 된 장은경은 이내 사람들에게 잊혀 진다. 바로 다음날 레슬링 선수 양정모가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게 되면서.
“시상대에서 애국가 없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분하고 억울하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참으려 해도 눈물이 고였다. 나는 다짐했다. 후회하지 말자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장은경 선수의 당시의 회고다.
유도인으로서 장은경은 이후 후세의 귀감이 됐다. 온 정열을 다해 후진을 양성해 수많은 금메달리스트를 키워냈기 때문이다.
결국 2위에 머물렀다. 세계신기록수립이, 올림픽 2연패의 기대가 걸려 있었다. 런던올림픽 수영 400m 경기 결선에서 박태환 선수는 그러나 중국의 쑨양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예선 경기에서 1위를 했으나 말도 안 되는 실격 판정을 받았다. 그 판정이 번복되기까지 4시간여가 걸렸다.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해도 극히 작은 정신적 충격에 리듬을 잃을 수 있다. 그게 수영경기다. 그런데 4시간동안 절망감속을 헤맸다. 그런데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의연히 결선 스타트 라인에 섰다. 그리고 역영을 펼쳐 간발 차이로 2위로 밀렸다.
끝까지 품격을 잃지 않았다. 금메달을 놓진 것도 실력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라이벌 쑨양을 치켜세웠다. 불과 23세의 어린 나이에 당당하고 세련된 매너와 품격을 보여준 것이다.
분명 금메달을 잃었다. 그러나 명예를 얻었다. 금메달 한 개의 무게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 준 것이다. 박태환의 은메달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은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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