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작품 돌려줘...예술도시 뉴욕이 뭐이래”
맨하탄 전시회 이세현씨, 갤러리측서 작품 판매대금 착복
갤러리 이미 파산신청, 손배청구 소송불구 현실적으로 반환 어려워
뉴욕주 ‘예술문화관계법’ 규정위반시 처벌규정 없어 유명무실
미국 뉴욕 맨하탄 미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은 한국의 유명 화가가 전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들을 되돌려 받지 못해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송은 세계 예술의 전당인 뉴욕 맨하탄 진출을 꿈꾸고 작품을 위탁하는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언제든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한 사례로 참고가 될 수 있어 주목된다.
연방뉴욕남부지방법원 기록에 따르면 ‘붉은산수’ 작품들로 한국과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이세현(45) 작가는 지난 해 4월7일~5월19일 맨하탄 첼시 소재 ‘니콜라스 로빈슨 갤러리’(Nicholas Robinson Gallery, Inc)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지난 해 3월22일 자신의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시리즈 작품 10점을 위탁하는 계약을 갤러리와 체결했으며 갤러리는 전시기간을 비롯해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이들 작품을 보관하며 40% 커미션 조건으로 대행 판매 할 수 있는 임시 대리권한을 넘겨받았다.
따라서 이작가의 뉴욕 개인전이 개최됐고 갤러리는 전시기간인 지난 해 4월20일 ‘비트윈 레드 059’를 5만 달러에, 5월11일 ‘비트윈 레드 126’을 3만 달러에 각각 판매하고 이작가가 전속된 한국의 ‘학고재갤러리’를 통해 이작가에게 대행 판매 계약에 따라 4만8,000 달러를 지불했다.
그 후 지난 해 11월30일 이작가는 ‘로빈슨갤러리’로부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컬렉션이 ‘비트윈레드 125’ 작품 소장을 희망한다며 전해온 판매 계약서에 서명해 다시 보내주었으나 판매 여부에 대한 추가 소식을 받지 못했다.또 2012년 1월 작품 예탁 기간이 끝남으로 위탁한 나머지 작품들의 반환을 요구해도 ‘로빈슨갤러리’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작가는 지난 2월 ‘로빈슨갤러리’의 변호인으로부터 경기불황으로 갤러리 운영이 어려워 파산신청을 고려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자 자신의 작품들을 되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다 결국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작가의 변호를 담당한 ‘헨리 정(한국명 정홍균)법률사무소’는 3월14일 ‘로빈슨갤러리’와 대표 리콜라스 로빈슨을 상대로 계약위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출했으며 4월3일 법원으로부터 ‘로빈슨갤러리’가 위탁소장하고 있는 모든 예술품과 예술품 판매대금을 동결시키는 가처분명령을 얻어냈다.
법원은 또 ‘로빈슨갤러리’측이 이작가 작품들의 판매기록과 현재 판매되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의 소재를 확인, 이작가측에 제공토록 명령했다.그 결과 ‘로빈슨갤러리’측은 37만 달러 상당의 작품들을 미국과 영국, 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 이미 모두 판매한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민사소송을 통해 갤러리측이 실제로 이작가의 작품들을 판매하고 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작가가 파산한 갤러리로부터 자신이 위탁한 작품, 또는 작품 판매대금을 되찾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갤러리측에 대한 형사처벌 역시 갤러리가 이작가의 작품을 판매했을 당시 돈을 착복하기 위해 계획적, 고의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음을 입증해야 하기에 사법당국의 기소청구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로 뉴욕주는 1960년대에 바로 이러한 사건들로부터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술문화관계법’을 만들었다.
법은 예술인들이 위탁하는 작품을 갤러리 등이 갈취하거나 판매대금을 착복하지 못하도록 임시로 맡겨지는 예술품과 판매대금을 갤러리 운영과는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위탁품’(Trust Property), 또는 ‘신탁기금’(Trust Fund)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 법은 규정위반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이 없어 사실 유명무실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 해 뉴욕주 하원에 관련 형법이 제출돼 통과됐으나 상원에서 계류된 상태로 올해 주의회회기가 끝나 2013회기에 새롭게 추진돼야 할 상황이어서 현행법으로서는 이작가가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해있다.
이번 소송 결과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정 변호사는 30일 “문제의 갤러리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매체로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의 예술인들도 유사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진출을 꿈꾸는 곳인데 그들을 보호하는 법규가 매우 허술한 것이 안타깝다”며 “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에 예술인들, 특히 해외와 타지역 예술인들이 제3자에게 작품을 위탁할 경우 확실한 위탁계약서 체결은 물론 여러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사전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갤러리측은 갤러리를 운영하기 위해 갤러리의 모든 영업 자금은 물론 갤러리 대표의 개인자금까지 투입해 지속영업을 노력했으나 실패해 현 상태로는 채무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의 진척현황을 점검하는 법원의 첫 공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 있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 이세현은 누구?
붉은색으로 분단된 산하 그려온 ‘붉은산수’의 화가
강렬한 붉은색으로 분단된 산하를 그려온 ‘붉은산수’의 화가 이세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았던 이세현은 2004년 영국 첼시 아트칼리지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가 작업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느꼈는데 자연에 적응하거나 극복하는 ‘문화의 차이’란 것은 ‘자연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다른 것’을 생각하다 보니 내 몸에 체화된 자연의 모습을 찾게 됐죠.”
그는 군 복무시절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야간 투시경으로 본 분단의 풍경,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을 뿌린 경남 통영의 고향 해안선 풍경 등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화폭에 담았다.
“적외선 투시경으로 본 모노톤(단색)의 나무와 숲이 황홀하게 아름다웠지만 그곳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죠. 해안선이 사라지는 고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지 못하는 삶,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사실 적외선 투시경으로 보는 풍경은 녹색이지만 이세현은 붉은색을 택했다. 금기와 신성, 몽환,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러운 기억의 심리적 색은 붉은색이라는 결론에서다.
대표작이 된 ‘비트윈 레드’ 시리즈는 유학을 마무리하던 2007년 무렵 탄생했다. 런던 작업실까지 직접 찾아온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수집가 한스 울리히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이후 영국 올비주얼아트,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 중국민생미술관 등의 해외 컬렉션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국내외에서 인기를 쌓고 있지만 작가는 또 다른 전환점을 모색 중이다. “지옥에 무지개가 뜬다면 어떨까요? 그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들을 구상 중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그리는 그림이지만 예술로 더 나은 세상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은 그리 큰 욕심이 아닐 테지요.”<2011년 8월14일 서울경제 인터뷰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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