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런던대회 한국팀 물리치료사
▶ 손주와 양궁장 찾아와 기보배 응원
64년 전에는 한국이 동메달 두 개를 땄는데 이번에는 벌써 금메달이 여러 개라니 놀랍고 자랑스러워요."
한국 여자 양궁의 에이스 기보배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2일 경기장인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이 광복 이후 ‘KOREA’ 이름을 내걸고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때 한국 선수단 담당 물리치료사로 자원봉사를 했던 주디스 파월(89) 씨가 그 주인공.
영국 베드포드대학에서 체육학과 물리치료학을 공부한 파월 씨는 당시 런던 근교의 윌레스덴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대회 기간 물리치료로 한국 선수단을 도왔다.
64년 만에 다시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자 파월 씨는 한국 선수단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대한체육회(KOC)에 전했고, KOC의 초청으로 이날 기보배의 준결승과 결승전을 관람했다.
한국 선수단 운동복과 모자를 쓰고 경기장에 도착한 파월 씨는 외손주 에드(34)와 클로디아(21)의 부축을 받긴 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이었다.
체육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경기장 한편에 앉은 그는 미리 준비해 온 작은 쌍안경으로 기보배의 경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태극기를 흔들어 응원을 보냈다.
1948년 당시 한국팀을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을 묻자 파월 씨는 "한국 선수단이 20일이 넘는 긴 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들에게는 큰 모험이었을 텐데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어 "마라톤에 출전한 선수와 원반던지기에 출전했던 여자 선수가 기억에 남는데 잘 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많을 텐데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고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파월 씨는 "당시 한국은 아주 가난했고 나중에는 전쟁까지 겪었지만 그 이후로 엄청난 일을 해냈다"며 "오늘 관람하는 양궁에서도 한국이 아주 강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올림픽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자원봉사한 사실에는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예전에는 지금 같은 장비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선수들을 돌보는 데에는 최선을 다했다"며 "나이는 들었지만 은퇴는 아직이다. 지금도 누군가 날 필요로 하면 치료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보배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파월 씨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64년 전에는 동메달 2개를 가져갔는데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이렇게나 많이 따서 영국보다도 순위가 높다니 놀랍다"며 "한국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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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자원봉사자로 한국선수단의 물리치료사를 맡았던 영국인 주디스파월씨가 손녀와 함께 2일(현지시각)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기보배의 여자양궁경기를 관전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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