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제시카 아귀레(31). 진단을 받은 뒤 곧 발병 사실을 주변에 알린 그녀는 현재 병가중이다. 그녀의 양쪽에 두 아들이 앉아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듣는 사람도 부담스러워
병세 드러나는데 가족한테도 비밀로 할 수는 없고…
털어놓을 땐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 분명히 해야
암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워낙 엄중한 사안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가볍게 털어놓기도 뭣하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환자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한다.
40여년 전인 1976년 호지킨 림프종 판정을 받은 뒤 사미라 벡퀴드는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호지킨 림프종이란 인체의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계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이다. 이를테면 방위군 사령부에서 터진 반란인 셈이다. 영국인 의사 토마스 호지킨이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병명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발병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벡퀴드는 교수 두어 분과 자주 어울리는 친구 몇 명에게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병의 진행상황 등에 관한 추가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마치 묵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벡퀴드의 ‘비밀 아닌 비밀’을 접수한 사람들도 그녀의 병에 관해 철저히 함구했다.
다행히 벡퀴드는 생사를 넘나드는 처절한 투병 끝에 병마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50세로 접어들던 해 그녀는 암세포의 2차 공격을 받았다. 이번의 격전지는 유방이었다. 전세가 기울자 벡퀴드는 암세포에 점령당한 양쪽 가슴을 도려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프라이버시를 원했지만 SNS(소셜네트웍 서비스)가 장악한 ‘온라인 사회’에서는 병마저 서로 나눠야 할 대상이다.
벡퀴드는 “호지킨스 림프종에 걸렸던 40여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암에 관해 말하거나 듣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가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개인 정보의 공유범위가 대폭 확대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다른 악성 종양들과 달리 유방암은 공론화에 따르는 부담이 대단히 가벼운 편에 속한다. 간암이나 뇌종양의 경우 최소한 환자 앞에서는 아직도 다들 입조심을 하는 분위기이지만 유방암은 사정이 다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마치 감기 몸살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려든다.
현재 플로리다주 포트 마이어스 소재 의료서비스 회사의 임상 디렉터로 활동 중인 벡퀴드(59)는 “시대가 변했다 해도 자신의 병에 대한 정보와 치료에 관한 개인적 결정사항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인기 유머작가인 노라 에프론도 비공개를 고수한 소수그룹에 속한다. 로맨스 영화 속의 재치 넘치는 우스갯소리로 명성을 얻은 에프론은 가족을 제외하곤 자신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에프론이 71세로 타계하자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한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알려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미국 굴지의 컴퓨터 제조업체 델의 중역인 마이클 잴리트(41)는 지난해 6월20일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함께 미국 명문구단 양키스를 대표하는 거포였던 루 게릭의 이름이 붙은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잴리트는 처음 진단을 받은 후 수개월에 걸쳐 전문병원을 찾아다니며 네 차례의 확인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오진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은 무참히 사라졌고 캄캄한 절망과 끔찍한 공포가 휘몰아쳤다.
한동안 그는 직장 동료들과 어린 세 자녀들에게 자신의 병을 숨겼다. 회사에는 구체적인 투병계획을 마련한 후에 알릴 작정이었다.
덜컥 불치병에 걸리고 나니 가장 걸리는 게 어린 자식들이었다. 아이들을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감의 늪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여러 면에서 병 자체보다 비밀유지가 내겐 더 큰 부담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매일 밤 잴리트는 이메일을 삭제하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비웠다. 올해로 각각 14세, 13세, 11세 된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다기 아빠가 루게릭병을 집중적으로 검색한 것을 발견하고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들 앞에서 아내와 자신의 병에 관해 말할 때에는 미리 정해둔 암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점차 드러나는 병증을 가리기란 어차피 불가능했다.
세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 루게릭병 연구와 환자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심리치료사인 프레다 와서만은 병으로 쇠약해진 채 일상을 끌어가야 하는 불치병 환자들은 누구에게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하는지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며 이들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안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에 부치려 해도 낌새를 채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말은 퍼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친지들 사이에 뻔히 아는 문제를 서로 모른 척하는 어색한 연극이 연출된다.
병을 알리고 말고는 물론 개인이 결정할 몫이다. 하지만 와서만은 기왕 병을 터놓고 알리기로 결정했다면 상대에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웃음을 선사하는 농담인지,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인지 분명하게 알려줘 엉뚱한 혼선을 피하라는 얘기다.
와서만은 특히 기도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그럴 때에는 주저 말고 자신의 희망사항을 솔직히 알려주라고 권했다. 진지한 소통은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
병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스스로를 암 환자라 생각하지 않으려 든다.
이들에게 동정적인 시선이나 위로의 말은 차라리 ‘독약’이다. 정상인을 대할 때와는 다른 주변사람들의 태도에서 이들은 자신이 불치병 환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반대로 병을 알려야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다.
제시카 아귀레는 스물아홉 살 되던 해인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그녀가 근무하는 셀폰매점의 매니저로 승진하기 3일 전에 날아들었다.
두 아들 둔 그녀는 즉시 회사 동료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발병 사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암이 뇌로 전이되자 아귀레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녀는 “내가 이 병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그보다는 꽁꽁 숨긴 병이 마음을 송두리째 파먹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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