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생활이요? 지난 2년간은 잊고 살았죠
▶ 뉴욕 재임기간 FTA타결. 재외동포 참정권등 굵직한 일의 연속
지난 2010년 8월 11일 뉴욕총영사관에서 공식업무를 시작했던 김영목(59)총영사가 9월초 한국으로 돌아가며 35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은퇴한다. 7월 25일 맨하탄 한국 총영사관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넓은 세상, 독특한 외교관의 삶을 들었다.
▲소통 잘되는 한인사회
어딜 가나, 평생을 ‘국가발전과 나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음에 ‘대한민국’을 담고 살아야하는 직업 외교관의 삶은 화려한 장밋빛일까, 어두운 가시밭길일까.총만 안 들었지 각국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외교무대에서 내려오는 김영목 총영사는 남다른 감회가 있을 법한데 정작 그는 7월 25일 현재 그럴 여유가 없다. 장래 계획도 아직 세우지 않았다.
“외교관 일이 워낙 긴장되고 타이트하다보니 하도 바빠서 아무 생각이 없다. 우선 한국으로 돌아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람들이 나를 불러낼 것 같다.”
평일은 물론 주말도 없이 오전8시부터 밤11시까지 일하는 그에겐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다. 지난 2년간 그는 뉴욕한인사회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최소한 뉴욕동포사회 지도자들간에 소통이 잘되고 있다. 좋은 일 하겠다는, 봉사하겠다는 마음도 많이 갖고 있어 보기좋다. 작년에 기적적으로 한미 FTA가 타결됐고 앞으로 2, 3세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어려운 한인경제에 도움 주고자 세무, 회계 세미나 등을 열어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앞으로 한국계 은행이 확장되면서 실질적으로 동포사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또 “한인 비즈니스가 어렵다보니 은행에서 론을 받기 어렵고 동종업종이 많다보니 모두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걱정한다. 김영목 총영사가 뉴욕에 있는 동안 한미 FTA 타결뿐 아니라 재외동포 참정권 시대가 열렸고 한식과 K팝 열풍시대를 맞는 등 굵직굵직한 한국관련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일본 위안부 기림비 팰팍 사건도 발생, 한국 아닌 뉴욕에서 일본 위안부가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팰팍 위안부 기림비를 조성한 분들의 기획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고맙다. 일본이란 이웃을 때리고 비난하고 때로 기만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들 역시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 휴머니티 정신을 지녀야 한다. 우리 스스로 도덕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뉴욕 총영사는 갈 곳도 많았다. 뉴욕한인들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 외에 미 주류사회 모임, 한미참전용사 모임 등 보통 하루에 2~3곳이 그를 청했고 하루 두 탕을 뛰어도 ‘왜 총영사가 안오느냐?’는 곳이 있다 보니 그에게 개인적인 시간이란 없다.
국제 상황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르고 한미 외교 및 경제관련 정책, 기타 사무 관장 외 한인사회 성장을 돕고 재외국민 보호지원 등 외교관으로서의 일 외에 한국에서 온 손님, 외교통상부 보고자료 등 산더미처럼 일이 쌓이면 그도 지쳤다.
“항상 긴장하고 살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무식’한 직업이다. 일정이 너무 많아서 정말 못해먹겠다고 불평한 적도 있지만 말로만 그랬지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해 온 일에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여가나 별다른 취미생활을 가질 수 없는 업무이다 보니 좋은 문화작품이나 재미있는 영화 상영 등 문화관련 행사를 갈 때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이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패션, 영화, 요리, 전시회, K팝 등의 문화도 업무 위주로 하고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직접 패션현장을 찍는 등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총영사로서 사람들 눈에 띄는 자리이다 보니 늘 긴장해야 하고 말도 가려 해야 하지만 그는 원만한 대화 속에 하고 싶은 말을 꼭 한부분이라도 집어넣어 상대방을 제압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전형적인 직업 공무원 같은 ‘범생’ 스타일이 아닌 부드럽게 생긴 외모도 한 몫 한다.
▲달라진 한국 위상
김영목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한국 정계는 혼란스러웠다. 젊은이들의 직업도 공직, 은행, 대기업, 언론 외에는 별로 다양치 않았다. 1976년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가 제10회 외무고시를 보고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문과 출신으로서 당연한 수순 같은 거였다. 1982년에는 프랑스 국제행정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를 했다.
1977년 외무부(1998년 외교통상부로 개편)에 입부하여 아프리카 손님을 지방으로 안내를 하고 다니다보면 추한 모습을 감추고 싶을 정도로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요즘은 한국 외교관 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국이 잘살게 되니까 주변나라의 기대와 요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저개발국가 뿐만 아니라 미국도 투자하라는 곳이 많다.”
김영목은 이렇게 1983년 아프리카 코트디브와르에 근무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달라진 한국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근무지는 코트디브와르, 1993년 싱가포르 참사관, 2007년~2010년 주이란 대사 외에 주로 미국에서 근무했다. 1989년 주미국 1등서기관, 1990년대에는 북미1과장, 북미국제2심의관, 북미국심의관, 1999~2002년 주유엔 공사 등 미주라인의 핵심보직을 두루 거친 ‘미국통’이다.
이 시절,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DC에 근무하면서 소비에트 연방 붕괴, 제1차 걸프전 등의 역사적 사건을 맞아 외교관으로 한국에도 변화가 올 것을 짐작했다. 독일은 조만간 통일되고 소련과 한국이 수교하게 될 것도 예측했다.
“워싱턴에서 정무팀장으로 일하던 시절 동구권이 붕괴되었다. 천안문 사건도 일어났다. 한국도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 북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라는 기안을 올렸다. 1991년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한국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대미관계 업무를 총괄하면서 남북 관계도 급진전, 북한의 핵무기 대책 초안을 만들고 남북 핵협상을 진행했다. 1995년 경수로 사업지원 기획단으로서 제네바 협정을 맺은 미국과 북한간 코디네이터 역할로 간접참여 했다. 2003년~2005년 KEDO(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 사무차장 시절에는 미국이 제공하는 경수로를 건설하던 중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한 것을 시인, 제네바 합의가 파기됐다.
서울에서 내과 클리닉을 운영하는 루시아 김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김영목은 ‘외교관으로서 자녀교육’ 에 대해 묻자 “다 알아서 자기 삶을 사는 것”이라며 간단히 답했다.한미·북한관계 적임자로서 뛰어난 친화력이 강점이었던 김영목 총영사는 누구보다 열심히, 재미있게 뉴욕생활을 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줄리아드와 파슨스, FIT, CIA 등에 한인들이 10~20% 다닌다. 앞으로 패션, 요리, 음악 등 한류를 이끌어갈 재원인데 바탕이 될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개인, 기업, 정부가 그런 인재들을 등용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갈 곳은 많고 몸은 하나니 미동부 지역을 커버하는 한인단체 1,000여곳을 일일이 갈 수가 없었다. 부영사와 영사 등 20여명의 직원들이 각자 분담해서 일을 해도 소홀한 지역이 있게 마련.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남부뉴저지, 델라웨어, 커네티컷 동포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는 그는 뉴욕으로 가끔 오고싶지만 ‘부자가 아니라, 경비가 많이 드니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하 웃는다.
김영목 총영사는 뉴욕한인 정치인들의 한국과 미국의 다리 역할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작년에 FTA가 통과되면서 보람있었고 평소 도와주던 미국 정치인들에게 보답한 것같다. 크라울리 의원, 찰스 랭글의원 모임 등에 격려차 참가, 성의를 표했는데 지역한인자영업자들이 많은 도움을 보태주어 정말 고마웠다. 모쪼록 1.5세,2세 한인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되기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