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이 부드러운 봄 날, 제비 한 쌍이 날아왔다. 제비가 우리 집을 찾아오다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집 처마 안쪽,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흙과 검불을 물어와 집 형태를 만들어 갈 무렵, 저녁이면 외등이 환히 켜지는 곳이라 좀 떨어진 곳에 짓는 게 좋겠다 싶어 집을 허물어버렸다.
녀석들이 헐어버린 자리에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소통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지만 다시 헐어버렸다. 그런데 헐자마자 같은 자리에 또 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곰곰 생각해보니 이놈들이 풍수지리를 따지는가 싶기도 하고, 꼭 그 자리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싶기도 했다. 미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에 집 짓고 살 권리가 있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는 뚝심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냥 두었더니 어느새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지어버렸다. 밤이 되어 외등을 켜면, 창 너머로 환한 불빛을 받으며 두 마리 제비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이 너무 밝아 녀석들이 잠을 자는 데 불편하겠다 싶었지만, 들어오지 않는 식구가 있는데 불을 켜두지 않을 수도 없다. 어쩌겠는가, 창을 통해 녀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짹짹거리는 소리에 쳐다보니 어느새 알을 낳아 새끼를 깠다. 네 마리다.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온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퇴근 후에 보니 제비집 아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있지 않은가 자기네들끼리 밀고 밀치다가 한 마리가 아래로 떨어진 모양이다. 난감했다. 그 며칠 후, 어미 제비가 새끼제비들에게 나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날던 새끼 한 마리가 힘에 부쳐 마당에 내려앉았다. 손으로 만지려하자 어미들이 짹짹거리며 나를 공격이라도 할 태세다.
꽤 여러 날이 지난 어느 저녁, 제비 한 마리가 못 위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보였다. 집 안에는 엄마제비가 새끼들을 품고 잠을 자고 있다.
새끼들이 자라 방이 좁아지자 아빠 제비는 밖에서 자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잠을 자면서도 머리는 집 쪽을 향하고 있다. 누구라도 식구를 해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잠을 자다가고 이따금 눈을 떠 집을 바라본다. 어릴 적 단간 방에 살 때, 어린 우리들을 따뜻한 아랫목에 차례로 눕히고 아버지는 윗목에서 주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두 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 창 너머로 이번에는 제비 두 마리가 나란히 못 위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찌된 일일까. 제비집을 쳐다보니 새끼 세 마리가 오불오불 모여 저희끼리 잠을 자고 있다. 제법 어른 몸집이 되어버린 새끼들이라 저 놈들 세 마리만도 제비집이 꽉 찬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났을까. 새끼들이 독립해 나갔는지 다시 제비 두 마리만 남았다. 그리고 또 알을 낳고 새끼를 깠다. 저 새끼들이 자라 혼자서도 날 때가 되면, 찬바람이 불어오고 제비는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우리 집을 찾아와 살림을 차린 연燕이네 식구.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녀석들을 창문 너머로 가만히 바라본다. 명년에도 또 와 줄지 모르겠다.
정찬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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