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터어키에 왔습니다. 누군가 왜 터어키를 찾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옛 동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을 거치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각축하던 역사적인 현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보다 그냥 신비로운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를“보스포러스”해협에서 바라 보고싶었습니다.
어쩌면 연전에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처음 이슬람 궁전“알함브라”를 보고 난 뒤 마음에 고였던 짙은 향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종교적인 이질감을 넘어서 이슬람의 역사와 정교한 아바레스크 문양으로 장식된 건축 예술에 대한 호기심 탓일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어려서 부터 성경을 통해 흠모하던 사도바울의 행적을 찾아 에베소와 초대 교회의 발상지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터어키는 먼 나라이면서도 친숙합니다. 우선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의 뿌리이기 때문이겠지요. 터어키족, 즉 투르크는 놀랍게도 돌궐족이라고 합니다. 옛날 옛적, BC 2,000년 경, 우리 조상들과 이웃하며 살았던 흉노족(Hun)과 한 뿌리인 셈입니다.
이들이 서쪽으로 수천 년동안 이동하면서 16개의 왕국이 흥망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터어키 땅,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히타이트, 프르기아, 리디아등도 터어키의 옛 이름 들이지요.
돌궐족들이 서진(西進)하면서 피가 섞여 이젠 동양인의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게다가 이들이 아랍문화권을 횡단하면서 회교도로 개종하고 아랍문자를 쓰게 돼 결국 이슬람의 종주국이 되었습니다. 지형적으로도 회교와 기독교의 사이,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에 위치해 근세까지 끊임없는 분쟁을 거듭하며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요.
벗이여. 동서양의 교차점,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색다른 감흥을 자아냅니다. 런던이나 파리를 갈때면 마치 전폭기로 공습하듯 부리나케 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양탄자를 타고 나르는 듯 합니다.
옛날 같으면 아마 낙타를 탄 대상(隊商)들을 따라 실크 로드로 접어 들었겠지요. 오아시스 루트를 따라 모래바람부는 사막길을 한없이 그리고 묵묵히 가로질러 갔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가타 크리스티의 소설에 나오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탔을지도 모릅니다. 유럽의 엘리트들처럼 파리에서 베니치아, 소피아를 거쳐 종착역 이스탄불로 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묵으며 추리소설을 썼다는 페라 팰리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겠지요.
이번에도 길동무들과 함께 가는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배낭을 지고 낯선 이국땅의 어스름한 저녁, 갈길을 몰라 길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서 느끼던 외로움이나 불안감은 없습니다. 새로운 곳의 신비스러움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느끼고 체험하면서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하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최정남 선생님 부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 샌프란시스코 여행 가족 12명은 우선 뉴욕으로 날아갔습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2004년 중국여행을 시작으로 격년마다 근 10년을 함께 여행해 온 식구같은 분 들이십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시카고와 동부에서 오신 여행가족들과 만나 30여명 대 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오래 안 이웃들 같습니다. 상냥하고 유능한 인솔자 J님은 우리들을 넓은 양탄자에 싣고 이스탄불로 날아갔습니다.
벗이여. 상상력을 가득 품고 이스탄불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여행의 금과옥조인“아는 만큼 보인다”도 사실이지만 이스탄불은“상상한 만큼 보인다”가 더 어울리는 고도인 듯 합니다.
이스탄불로 날아가는 양탄자는 편안했고,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반짝입니다. 그 중에 수 광년을 걸려 온 별 하나. 돌궐의 한 부족이 막 서쪽으로 출발하던 그 새벽에 생겨난 별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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