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마당 도토리 나무들과 잔디밭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스프링쿨러 덕택에 여름의 대표 색인 진 초록으로 잘 자랐다.
처서를 지나면서도 더위의 위세는 꺽일 줄 모른다. 창이란 창은 모두 열고 바람만 기다린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갱년기의 열기까지 보태 져 이번 여름은 그야말로 제대로 더위와의 전쟁이다.
이럴 땐 열을 식히는 방법으로는 얼음이 둥둥 뜬 수박 화채나 오이냉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잠시 눕는 것이 최고이다.
문에 걸린 모시 가리개가 가늘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밖의 바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누운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한국의 평상과 대청 마루가 생각난다. 한 여름 밤 마당 가에 모기 불을 피워 놓고 평상에 누워 올려 보던 밤 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많았었다.
북두칠성을 따라 가다 보면 사자 자리도 보이고 은하수도 흘렀다. 모기와 하루살이들을 쫓는 외할머니의 부채질 소리도 선잠 속에 들리곤 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대청 마루에 등을 대고 누우면 나무의 시원한 느낌으로 더위가 좀 잦아 들었다. 그땐 180도 회전 선풍기와 태극 문양의 부채를 옆에 끼고 지냈다.
모시 이불을 꺼낸다. 어느 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 온 것이겠지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세월이 많이 지나 수놓은 부분 옆의 천은 날근거리며 헤어 질 것 같다. 손 수 몇 개인 소박한 무늬이다.
가양은 두 겹으로 모양을 잡았다. 세상이 복잡하니 하루를 쉬는 잠자리는 단순하면 좋을 것 같다. 한 귀퉁이를 끌어 다리를 덮자 까칠한 촉감이 시원하다.
마 종류인 모시는 모시풀 껍질을 손질하여 만든다. 한국에서는 한산 모시가 유명하고 여름이면“한산 모시 제”라는 축제가 있어 모시풀 베는 작업부터, 줄기들을 가늘게 만들어 모시 실을 만들고, 모시 삼기인 손으로 다리에 비벼 꼬아 실을 잇는 작업, 모시 날기인 모시 실에 자연 친화적인 물감들이기, 틀에서 모시 짜기까지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수고로 여름을 지낼 수 있는 이불 하나와 가리개를 얻었다. 모시이불을 조금 더 끌어 당겨 등까지 덮으며 뒤척거린다. 그래도 살과 살이 닿는 곳은 땀으로 끈적거린다.
또 하나 생각 나는 것은 죽부인이다. 대오리로 엮어 시원한 촉감을 살려 만들어 피부에 닿아도 땀이 나거나 끈적거리지 않는다. 대나무를 속이 비도록 둥글게 엮어서 아담한 크기로 만들었다.
약간의 쿠션까지 가미 되어 있어 안거나 팔 다리를 걸치기에 아주 편하다. 낭창 낭창한 탄력도 있다. 피부에 닿을 때 대나무의 촉감도 모시처럼 시원하다. 모시는 땀 흡수가 잘 되어 덮어야 시원하고, 대나무는 열 발산이 잘 되어 그 위에 누워야 시원하다.
죽부인은 구멍이 뻥뻥 뚫려 통풍이 잘되고 감촉이 차기 때문에 열 증상들을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대나무로 만든 도구가 죽부인(竹夫人)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것을 보면 옛날 지체 높은 집에서나 사용 되었던 것 같다. 죽영감이나 죽서방이란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남정네들이 독점적으로 사용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 차별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자가 죽부인을 안고 잔다고 흉이 될 것 같지도 않다.“덮다, 더워!”를 입에 달고 사는 요즈음 나 같은 사람들에겐 모시 이불을 덮고 죽부인을 안으면 그보다 더 좋은 한여름 밤의 침구는 없을 것이다.
더하여 대나무로 만든 죽침(竹枕)이나 나무로 만든 목침(木枕)을 베고 대나무 돗자리 위에 눕는다면 여름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더위도 지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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