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한인이민 가장이 너무 어이없게, 너무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다. 지난 3일 한낮 뉴욕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58세 한기석씨가 말다툼을 벌이던 30대 남성에게 떠밀려 선로에 추락한 뒤 달려오던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씨는 승강장 위로 올라오려고 애쓰기도 하고 열차를 향해 팔을 흔들며 “스톱, 스톱”을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꾜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해내고 숨졌던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이 뉴욕 지하철역에는 없었다. 아무도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작년 한해 뉴욕 지하철에서 열차에 사람이 치인 사고는 147건으로 사망자는 50명이었다. 평균 매주 한명 꼴이다. 안타까운 비극이지만 잦은 사고의 하나로 묻혀버릴 수 있었던 한씨 사건에 대한 미국사회의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발생 다음날이었다.
4일자 뉴욕포스트 1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건발생 직전 가슴 높이의 승강장에 팔을 얹은 채 달려오는 열차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한씨의 사진이 타블로이드 신문 전면에 실려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제목이었다. “선로에 떠밀려진 이 사람은 곧 죽는다”는 작은 글씨들과 함께 ‘죽을 운명’이라는 뜻의 “DOOMED”라는 주먹 크기 제목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을 수 없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노력 대신 사진을 찍어 판 프리랜서 사진가, 엽기적인 보도로 언론의 기본 윤리마저 외면한 신문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쇄도하면서 미국사회 일각에선 ‘실종된 시민의식’에 대한 자성론이 일고 있다.
한씨가 떨어진 후 사고까지의 시간은 22초부터 1분 30초 정도로 알려진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그를 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또 끌어올릴 만큼의 힘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는지 등은 확실치 않다. “당황하고, 놀라고, 두려웠던 공황상태였다”고 한 목격자는 전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 같은 위기에 살신성인을 서슴치 않는 영웅이 못되기 때문이다.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몰지각한 황색 저널리즘에 함께 분노하는 우리에게 이번 비극은 하나의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힘든 일상을 핑계로 뒷전으로 밀어두는 인간의 기본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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