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 치료법으로 백혈병에서 탈출한 엠마가 어머니인 카리 화이트헤드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엠마 화이트헤드(7)는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거실에 깔아놓은 매트 위에서 수시로 공중제비를 돌고, 텀블링을 해댄다. 집안에서도 조용히 걷는 법이 없다. 늘 콩콩거리며 뛰어다닌다. 잠자리에 들 때에는 양 팔을 활짝 편 채 자신의 침대위로 온 몸을 날린다. 하는 짓으로 보면 영락없는 말괄량이 계집아이다. 카리와 탐 화이트헤드 부부는 어린 외동딸이 휙휙 공중제비를 돌 때마다 걱정스런 마음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굳이 말리려들지 않는다.
의사들“더 이상은…” 에 부모가 딸 목숨 담보‘베팅’
독성 제거한 에이즈 바이러스, 암세포 잡도록 투입
첫 시도 치료법으로 회생… 이젠 귀여운 말괄량이로
현재의 상태를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난봄까지만 해도 엠마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항암치료를 받은 엠마가 두 차례 재발을 일으키자 의사들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애가 탄 카리와 탐은 필라델피아 칠드런스 하스피틀의 관계자들에게 아직 실험단계에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사용해 달라고 매달렸다.
문제의 실험적인 치료법은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미성년자에게 사용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성인의 경우에도 엠마와 같은 종류의 백혈병 환자에게는 시술된 적이 없었다.
목숨을 담보한 위험한 베팅이었지만 당시 엠마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엠마의 편이었다. 지난 4월 실험적 치료법을 시술받은 엠마는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회생했다.
엠마는 환자의 면역체계에 지속적인 항암 능력을 제공받은 최초의 어린이 환자인 동시에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임상실험 참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의료사적 기록까지 보유하게 됐다.
그녀는 다섯 살 되던 해인 2010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이란 혈액 및 골수 내 림프구 계통 세포에서 발생하는 혈액암이다.
엠마를 살린 실험적 치료법은 독성을 제거한 에이즈 바이러스를 사용해 암세포를 잡도록 엠마의 면역시스템을 유전적으로 리프로그램(reprogram)하는 방식이다.
의료진은 무장해제한 HIV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혈구 세포의 일종으로 면역조직의 행동대원인 T-세포에 유전물질을 전달한다. 여기서 T-세포는 암세포를 요격하기 위한 항원을 탄두에 탑재한 고성능 유도 미사일의 기능을 수행한다.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는 유전물질 전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연구진에 의해 무력화된 후 T-세포의 탄두에 가공된 유전자를 전달하는 운반책으로 발탁됐다.
운송책인 HIV 바이러스가 T-세포에 전달한 가공 유전자는 B-세포를 공격하도록 T-세포의 프로그램을 다시 짠다.
B-세포는 면역체계의 구성원이지만 백혈병이 발병하면 암세포로‘ 변절’한다.
‘키메라 항원 수용체’ (CAR) 세포라 불리는 리프로그램된 T-세포는 환자의 정맥 속으로 투입된 후 증식을 거듭하며 암세포에 공격을 가하게 된다. 변형 T-세포는 B-세포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CD-19이라는 단백질을 포착해 공격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따라서 T-세포의 레이더에 CD-19이 포착되면 항원을 장착한 탄두가 표적을 따라가 파괴한다.
신체 내부에서 T-세포와 암세포 간의 대대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환자는 심한 오한과 발열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연구진은 이런 증상을‘ 흔들기와 굽기’ (shake and bake)라고 부르지만 보다 점잖은 의학용어로는 ‘시토킨 유리증후군’ 혹은 ‘시토킨 폭풍’이라고 한다. 시토킨은 면역체계가 가동될 때 세포에서 쏟아져 나오는 천연 화학물질로 발열 등의 증상을 초래한다.
시토킨 폭풍은 폐로 밀려가 혈압을 위험스러운 수준으로 떨어뜨리는데 시술을 받은 뒤 엠마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술 직후 엠마의 체온은 105도까지 급상승했다.
의식을 잃은 채 산소 호흡기에 연결된 엠마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녀의 친구와 가족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엠마의 병상을 둘러쌌다.
그 절박한 순간에 엠마를 회생시킬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반복된 혈액검사를 통해 시토킨의 일종인 IL-6가 정상수준의 수천 배로 늘어난 사실이 포착된 것.
펜실베니아 대학의 연구팀을 이끈 칼 준 박사는 IL-6의 수준을 낮출 방도를 찾는다면 엠마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IL-6를 잡는 약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토실리주맙이 ‘마법의 해결사’였다.
시술절차를 지휘한 역학 전문의 스티븐 그룹박사는 준 박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악템라’라는 브랜드명을 지닌 토실리주맙을 투입할 것을 지시했다.
엠마의 경우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토실리주맙이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거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도박은 성공했다. 불과 수 시간 만에 엠마의 상태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5월2일 엠마는 의식을 되찾았다. 중환자실 스태프는 생일축가로 그녀의 소생을 반겼다. 그 날은 엠마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엠마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한 변형 T-셀은 이를테면 ‘살아 있는 약품’이다. 다른 항암제는 복용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사라지지만 리프로그램된 T-셀은 계속 몸 안에 ‘주둔’한다. 이 때문에 암세포가 다시 기세를 떨
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변형 T-세포에겐 B-세포의 표식인 CD-19 단백질을 포착하면 암세포인지, 아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는 맹점이 있다.
백혈병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건강한 B-세포는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동지이다. 따라서 이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 면역체계가 손상을 입어 외부 병원균의 침입에 취약성을 보이게 된다. 이 때문에 엠마를 비롯, 이제까지 T-세포 변형시술을 받은 10여명의 백혈병 환자들은 면역 글로빈을 정기적으로 주입받고 있다.
이 치료법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T-세포 가공‘ 원가’는 개인당 2만달러 정도다. 물론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마지막 수단인 골수이식 수술비용보다는 저렴하다.
그러나 이 액수는 말 그대로 T-세포를 리프로그램하는데 들어가는 경비일 뿐이다. 준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순익 마진이나 시설 감가상각비, 다른 관련 의료 경비와 연구비 등을 일체 포함하지 않은 액수”다.
올해 초등하교 2학년으로 등록한 엠마에게 재생의 기회를 제공한 신 치료법은 같은 병에 걸린 환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열린 가능성’이 아니다. 새로운 치료법도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유전즉생, 무전즉사’의 현실적 기본논리를 바꾸지는 못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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