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 해안에 그리스 사람들이 와서 건설한 쿠마(Cumae)라는 식민 도시가 있었다. 거기에 태양신 아폴로를 모신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는 시빌 (Sibyle)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무녀가 있었는데 용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신탁을 받아서 점도 아주 잘 쳤단다. 그래서 인근 남정네들은 모두 그녀에게 반했고 점을 치려 오는 사람이 줄을 이엇다. 시빌은 인생이 즐거웠다. 수입이 좋아 먹고 살것 풍족하고 남자들은 자기만 보면 넋을 잃는 것이다.
태양신 아폴로도 바람끼라면 그리스의 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하루는 아폴로가 홀연히 시빌에게 나타났다. “나는 너의 처녀성을 갖고 싶다. 그대신 네 소원 하나를 들어주마.” 시빌은 신전에 수북히 쌓여진 먼지를 두 손으로 쓸어 담았다. “이 먼지 알갱이 수 만큼 생일을 지내게 해주세요.” 아폴로가 다시 말했다.
“나와 계속 사랑을 나눌 젊은 육체는 필요없나?” 시빌은 시빌은 사실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오래 살고 싶은 욕심으로 아폴로에게 비록 몸은 한번 허락해도 사랑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 보다 자기가 언젠가는 늙어갈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아폴로 역시 시빌의 처녀를 가지면서도 두번 다시 묻지 않았다.
손안에 쥔 먼지 알갱이 수천인가? 수만인가? 시빌은 이제 그 숫자 만큼 오래 살게되었지만 몸은 세월이 갈수록 늙어가는 것이다. “아! 젊음도 요구할 걸!”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요구는 단 한번, 그후 아폴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백년이 지나고 이백년이 지나고 시빌은 점점 늙고 쪼글어져서 나중에는 한 주먹도 않될정도로 작아졌다.
그리고 새장에 넣어진채 동네 아이들의 작난감이 된것이다. 아이들이 물었다 “무녀야 넌 무엇을 원하니?’ 그녀가 대답했다. “죽고 싶어.” 아이들은 그 쪼글어진 모습이 우습고 벌레 소리같은 목소리가 재미있어서 묻고 또 묻는다. “무녀야 넌 뭘 원해?” 그 때마다 무녀는 대답한다. “죽고 싶어.” 참으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인생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통이고 저주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다. 싹이 움트는 때, 뿌리 내리고 줄기를 세우는 때, 풍성한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때. 쉼으로 다음 해에 티워낼 새싹을 준비하는 때. 이렇게 각 때를 구분하여 주어진 기한이 바로 생명임을 깨닿는다. 기한이 없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다. 죽을 수 없는 인생이 있다면 그 안에 생명은 이미 없는 것이다. 생명은 거기에 주어진 기한이 있어서 소중한 것.
나는 지난 달 ‘은퇴’라는 것을 하였다. 나의 때가 된 것이다. 일 때문에는 바쁘지 않은 덕분에 요즈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돌이켜 보면 쿠마의 무녀처럼 누리지도 못할 것을 원하기도 했고, 원하는 것 때문에 순수하던 맘과도 종종 타협했으며, 그러면서도 마땅히 해야 할것에 소홀이 하였던 자신을 발견하니 부끄럽다.
섬기는 교회 새벽 기도에 나가서 자리에 앉으면 우선 쥐었던 손부터 펴본다. 세상을 움켜쥐고 싶었던 손, 은퇴한 지금 내 손안에 남겨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비록 황금(黃金)은 남아있지 않아도 평생을 함께 살아준 아내와 잘 성장해준 자식들이 손에 담겨져 있어서 행복하다. 은퇴한 지금 ‘주어진 때에 충성하고 정해진 기한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축복임을 깨닿는다. 기도중에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은밀한 그 음성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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