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목을 뒤집듯이 확 벗어서 완전히 털고 싶다. 아니 버선은 너무 작고, 매일 밤 덮고 자는 이불을 들고 뒷마당으로 나가 훨훨 펼치면서 널어 놓고 싶다.
두꺼워 채 마르지 않은 넓은 이불 홑청을, 어느 날 뒷마당의 늙고 뭉퉁한 나무의 빨랫줄에 널어 놓고 들어와 누룽지 차 한잔을 마시면, 왜 그리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들뜨는지 마냥 입가가 싱글벙글한다. 옛날 생각이 나고, 그 펄럭이는 바람따라 흔들거리는 빨래에 어린 시절이 함께 살랑거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냥 행복해져 버리는 것이다.
하얀 빨래가 뽀송뽀송 하늘의 단 하나 햇빛에 달구어져 말라갈 때의 그 청결함과 순박함과 멋모르는 감사함은, 해질 무렵 빨래를 걷어 또닥또닥 개어질 때까지 간다.
이 이불 껍데기 하나도 날 잡아, 빛 좋고 바람 선선한 날 꺼집어 내어 빨래하고 말리고 개어 놓으면 이렇게도 좋은데, 매일 덮고 있는 인생의 이불은 차마 한 번도 적나라한 햇빛 아래에 꺼내보질 못했다. 그 많은 세월의 닳고 닳아 저절로 떨어져 나간 삶의 비듬과, 밤마다 꾸는 허황한 개꿈의 몇바가지 땀과,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뒤집어씌운 두터운 화장의 지저분한 자국들을 그 인생의 이불에다 고스란히 묻혀 놓았을 것인데 말이다.
지금이 어쩌면 이 인생의 이불을 살금살금 조심스레 밖으로 꺼내어야 할 때일 거다. 그 나이 숫자의, 그 무게만큼 아주 많이 무거워, 한마음 다른 곳에서는 귀찮으니 언제 또 날 잡자는 게으름도 솟아나겠지만, 없든 용기라도 내어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삶의 시간이 갖다 준 혜안의 막대기로 아주 세차게 앞뒤를 바꾸어 가면서 때려주어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묵은 변명의 먼지들이 날아갈 것이고 또 납작해진 세월의 그 자리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런 후, 따뜻하고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이 인생의 이불을 온종일 완전하게 말리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만 유난히 인색하게 굴었고 야박했던 지난날에게, 이젠 이 인생의 빨래를 잘 말려 황혼이 아름답게 퍼져가는 저녁 무렵 거두고서 다박다박 제자리 잡아주면서 "그래그래 참 잘했다"라고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이 문득 보고 싶다.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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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자와 20일자 여성의 창 필진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9일자 ‘쟤네들이 왜 그래’는 아그네스 한씨, 20일자 ‘음악과 생활’은 이예진씨의 글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필진과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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