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미 중부 캔사스 주에서 김치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은 한국 사람 이외에 한국 전쟁에 참가한 군인 또는 그의 가족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김치는 “땅에 오랫동안 묻어두어 썩은 냄새가 지독한 것”이었다. 엄마는 “김치 없으면 죽는다”라는 믿음으로 미국 배추로 김치를 담궈 드셨다. 가끔은 일본가게에서 비싼 일본식 김치를 사먹기도 했다. 어린 나는 서양식도 잘 먹고 해서 김치가 그리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시절 식성이 바뀌어버렸다. 내 기숙사방 냉장고 안에 늘 김치가 있었다. 한번은 느끼한 점심을 먹은 탓에 군침이 돌게 하는 총각 김치를 한개 꺼내 먹었다. 왠걸 그 병을 연 순간 냄새가 기숙사방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냄새가 퍼졌는데 47명의 여학생들이 “이것 뭐가 죽었어?” 하며 난리를 피워 제2차 한국 전쟁(?)이 날 뻔했다. 내 얼굴은 홍당무가 아니라 폭발하는 화산처럼 변해버렸다. 그후 나는 김치에 대한 생각들을 돌려놓으려 김치를 만들어 먹었고 또 레시피까지 적어 주기도 했다.
새콤하고 아삭아삭한 김치와 된장찌개만 있으면 행복한 나는 김치가 늘 많이 필요하다.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부침개, 김치콩나물국, 김치비빔밥, 김치냉면, 김치비빔국수, 김치고등어조림, 김치피자와 김치햄버거, 김치 김치 김치. 나는 김치 홍보대사(ambassador)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직장 동료들은 불고기, 잡채, 만두보다 김치부침개와 김치볶음밥을 해달라고 보챈다.
언젠가 한국 신문 기사에서 자녀들이 대학에 가서 제일 그리워하는 음식이 김치 찌개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번 맛들이면 중독되는 김치, 지금은 김치 때문에 얼굴이 붉어질 일도 없으며, 오히려 자랑스럽고 뿌듯한 한국의 상징이 되었다.
마침 이 글을 쓰던 중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라는 생각으로 문을 열어주니 한 친구가 김치를 싸들고 온 것이다. 전화를 해도 내가 받지 않는다고 친구가 화를 벌컥냈는데, 나도 어이없어 웃었다. 하필이면 김치에 대한 글을 쓸 때 김치를 가져오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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