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에 육감적인 분위기, 서정적이면서도 고혹적인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는 끌로드 소떼 감독의 추억의 영화, Les Choses de la Vie(The Things of life)에서 내가 좋아하게 된, 오스트리아계 프랑스 여배우이다. 부인과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 남자의 애인 엘렌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비슷한 시대의 까트린느 드뇌브나 브리짓드 바르도와는 다른 내면의 연기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한때 로미 슈나이더는 알랭 들롱의 약혼녀였고 그들은 당시 최고의 선남선녀 커플이었다. 알랭 들롱과의 약혼이 깨지고 그녀는 첫결혼에서 금발의 아들을 얻는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아이는 14살때 집 울타리를 넘다가 사고로 뾰족한 울타리 끝에 동맥을 찔려 죽게 된다. 아들을 잃고 찍은 한 영화에서 로미는 죽은 아들 또래 소년의 엄마역을 연기한다. 그녀가 그윽한 눈길로 소년의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눈물 흘리는 부분은 정말 명장면이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망울에서 눈물이 가득 고이고 곧 부서져 천천히 반짝이며 떨어지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이 영화를 찍고 얼마 안 있어, 아들이 죽은 다음해인 1982년, 43세의 그녀는 빠리 아파트에서 신경 안정제와 알콜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랑하는 대상이 죽은 것이 애처로와 견디다 못해 자기도 같이 죽어버린 로미 슈나이더들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순전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사랑하던 대상이 죽었을 때 받는 뇌의 외상적 충격(trauma)으로 인해 ‘자신’도 죽은 듯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특권이고 살아보았기 때문에 죽음도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귀하고 소중한 책을 선물했다 하자. 영원히 아끼고 싶은 그 책을 불가피하게 반납할 일이 생겼다. 그 슬픔이 크다고 울기엔 그 선물을 받아 누렸던 시간이 너무 귀하다. 고통 때문에 같이 죽음 속으로 딸려들어가는 것은, 고통에 자동적으로 먹혀 버리는 반작용(reaction)에 불과하며 이는 사랑의 증거라기 보다 나약함의 증거라고 나는 로미 슈나이더의 마지막 눈물을 보며 되새겼다. 신은 슬픔의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을 더 큰 힘을 우리에게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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