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워싱턴 한인사회 부동산 관련 금융사기 그 후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찬물”울상
“곪은 상처 도려내야 새 살”의견도
“변호사님 요즘 괜찮으세요?”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이.”
애난데일에 사무실이 있는 김 모 변호사는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 마음이 씁쓸하다. 무슨 엉뚱한 질문이냐는 듯 대답하지만 한인사회를 휩쓸고 간 부동산·융자 사기 광풍 때문에 자신에게도 파편이 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짜 염려가 돼서 해주는 말인지, 아니면 ‘너도 별 수 있을까’ 하는 비아냥거림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꾸 이런 전화 주지 마세요. 가슴이 철렁합니다.”
성실과 실력으로 오래 쌓은 신뢰 덕분에 규모있는 부동산중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모 씨는 사건 이후의 업계 동향을 묻는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 대답했다. “지금 같은 때엔 쥐 죽은 듯이 잠복해 있는 게 최고”라며 “한인 부동산, 융자, 변호사업계를 싸잡아 한 통속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그는 실토했다.
이 씨는 “미국 부동산 경기는 좋아진다는 데 한인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설상가상이었다”며 “하루빨리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관련 업계 종사자든 아니든 ‘자업자득’이었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주택 거래의 모든 정보를 담는 ‘HUD-1(마감 명세서)’를 세개씩이나 작성해 은행과 고객을 속이려 했던 사기 수법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박 모 부동산 브로커는 “참으로 아픈 일이지만 이렇게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나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소중한 집을 마련하면서 엉뚱하게 관련되거나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을 제외하고 사기를 공모한 사람은 엄히 처벌 받아야 한인 부동산업계도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김 모 변호사도 “사건의 성격을 살펴보면 악의 고리가 연결돼 공생하는 관계였던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소비자들을 위해 성심껏 규정대로 일하는 에이전트보다 규정을 어기더라도 커미션을 많이 남겨주는 사람을 서로 소개하고 손님 하나라도 더 끌기 위해 안간힘썼던 관행은 이참에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업무 진행이 늦더라도 꼼꼼히 서류를 살펴 바이어나 셀러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전문가는 오히려 왕따를 당해왔던 현실이 타파되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다는 얘기다.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장을 보면 대부분 2007년을 전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당시 한인 부동산업계는 내리막길에 들어선 미국 부동산 시장과 달리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고 문제는 남들 모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이 모 변호사는 “나도 부동산 관련 일을 하지만 상대 고객의 한인 변호사의 분명하지 않은 업무 처리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며 “이런 종류의 사기가 신문에 난 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건 확대를 막을 수는 없었나?
김 모 변호사는 “전문가 집단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겠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기소장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은행과 바이어, 셀러를 위해 각기 다른 HUD-1을 만드는 대담성을 보였고 특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 이상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세틀먼트를 끝내고 받은 HUD-1을 다른 전문가에게 가져가 검토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해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 변호사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일을 맡기면서 누가 그런 의심을 하겠느냐”며 “한인 소비자들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았다는 면에서 더욱 책임이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건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란 소위 전문가들이 스스로의 명예를 지켜나가는 것과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앞서 고객 편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봉사 정신 외에는 없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은행만이 피해자인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부동산 에이전트, 융자인, 또는 변호사를 통해 그 동안 주택을 사고 팔았던 한인들중에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봐 염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미 계약이 완료됐고 금전 거래도 종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기임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방조했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물론 입장이 다르다. 검찰은 사안별로 판단해 수사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혹시 자신의 몫을 변호사나 부동산 중개인, 또는 융자인이 가로챈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라면 민사 소송도 가능하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한인사회 전체라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다. 버지니아 연방동부 검찰이 발표한 것처럼 ‘지역 부동산 시장을 흔들어 놓을 만큼’ 규모가 방대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한인 부동산업계 및 변호사업계에 대한 불신 조장은 결코 득이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부동산업자인 김 모 씨는 “상처가 꽤 오래 갈까봐 걱정”이라며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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