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었다. 낯선 환경에 좀처럼 정이 붙지 않아서 처음 두 세달을 굉장히 우울하게 보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있었다. 통통하고 정 많은 친구였다. 첫 정이라서 그런지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대학에 가서도 기쁘고 즐거울 때 슬프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였다. 결혼하고 내가 미국으로 떠나온 후에도 한국 가면 가족 다음으로 제일 먼저 만나는 친구였고 떠나기 전날 마지막 만나는 친구도 그 친구였다.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담담하게 간암에 걸렸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혼자만 있게 되면 눈물이 나왔다. 아픈 친구 곁에 못 있어줘서 미안해서 울고, 점점 나빠지는 병세에 참담해져서 울었다. 친구는 거의 1년 동안 수술과 치료를 병행했지만 8살짜리 아들을 남기고 떠났다.
친구랑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는 같이 냉면을 먹었다. 냉면을 먹고 난 후 서로 돈을 내겠다고 가벼운 실랑이 끝에 친구가 그랬다. “너한테 이것도 안 사주고 보내면 내가 많이 서운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그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마지막이라서도 그랬겠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 마음이 오롯하게 느껴져서였다.
작년 한국에 갔을 때 친구 묘소에 찾아갔었다. 너무 양지바르고 풍광이 좋아서 눈물이 나다가도 좋았다.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애처로운 친구가 그나마 죽은 뒤에 누리는 호사라서 그랬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었던 내가 친구의 죽음 후에 눈물이 더 흔해졌다. 남들이 느끼는 생로병사의 슬픔과 기쁨이 훨씬 더 잘 전해져 왔다. 내가 겪은 친구의 아픔과 죽음이 내 마음속에 연민이라는 커다란 창문 하나 달아준 거 같았다. 창문을 통해서 보는 사람들은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기뻐 보였다.
친구가 떠난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이젠 친구를 생각할 때 슬프기보다는 그립다. 세월이 흘러서 그리움도 희미해질 때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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