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를 송송 썰었다.
아니 썰었다기 보다 어떻게 하면 요놈을 몽땅 영어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머리를 짜고 있었다. 역시 머리를 짜면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굳이 ‘송송’ 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고 커다란 그림으로 보라는 거다. 번역이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새색시.
상상해 보았다,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온 젊은 새색시. 예쁜 치마저고리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새색시가 시간 맞추어 달려올 임을 위하여 두부찌개에 넣을 파를 송송 도마 위에서 쓸고 있다.
리듬이 있다. 기대감이 있다. 새 삶을 시작하는 젊은 남녀의 행복과 희망의 싹이 있다. 앞치마 교향곡이 도마 위에서 토대기는 반주에 맞추어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반면,누군가가 죽지 못해 억지로 끓이는 꿀꿀이 부대찌개 속에 들어갈 썬다만 두루 뭉실 파 한 뭉치를 상상한다면…….
“아빠, 나 ‘한’ 이라는 게 무슨 meaning 하는 건지 알 것 같아.”뜬금없이 아들 녀석이 말한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저녁 식탁에서 말이다. “뭐? 한 을 알 것 같다고?”“엉”“무슨 한? ‘like 위안부 할머니들의 뼛속 깊숙이 사무치는 천추의 한을 누가 풀어주나’ 하는 그런 ‘한‘?”“엉.”“말해봐.”“한마디로 말 못해. Long explain 이 필요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너 그 단어 어디서 배웠니?”“직장 친구들한테서.”녀석의 직장 친구들이란 Computer Nerds 가 아니면 Crappy Artists 들이다.
“네 친구들은 어데서 그 말을 배웠다는데…….”“LA에서. 거기 항국을 좋아하는 White Guy 들이 항국말 배우다가 알게 뎅거래.”‘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어쩌고 하는 말. 대한민국 연속극 한두 번 보다보면 흔히 나오는 말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말과 더불어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이다. 부모의 기대에 미달하는 사윗감이나 며느리감을 소개 받은 후 입에 침을 튕기며 하시는 말씀.
미국 땅에서 1세 부모들이 2세 자녀들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억지 쓰는 부모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 고집을 이어가는 확률은? 또 자식들과 백퍼센트 의사소통을 하는 확률은?
‘나는 내 며느리하고 의사소통만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Okay 다.’ 그 옛날 ‘서북항공‘ 보잉 707편으로 김포 공항을 떠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은근한 압력이었다. 일본 며느리까지는 봐 주시겠다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압력에 어머니는 Happy Ending 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행사를 할 자신이 없다. 우선 압력이 통할 것 같지가 않고 또 의사소통이 되는 족속이 산호세에 무려 백여개 이상 된다고 들었다. 지구상 중요한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뭉쳐 사는 사회다. 그저 희망 사항이라면 일본과 중국까지만 포함했으면 하는 거다.
파를 송송 썬다.
왜?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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